- 뉴스
- 하나님 나라 확장과 선한 일을 세상에 알리는 청지기
피플앤이슈 - 베트남 비라카미사랑의선교회 장요나 본부장
New Hot |
|||||
---|---|---|---|---|---|
기자명
|
김덕원 |
||||
기사입력
|
2019-07-26 |
조회
|
6250 |
||
이번 주간 베트남 선교를 통한 공산권 선교전략에 관한 기획보도를 전해드렸습니다. 오늘 피플앤이슈 시간에는 지난 30여 년간 베트남 복음화를 위한 선교사역에 매진해온 ‘비라카미 사랑의 선교회’ 장요나 본부장을 김덕원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기자) 베트남에서 선교사로 활동하신지 벌써 30년 동안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30년 전과 지금의 베트남 복음화, 분위기를 비교하신다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A) 이걸 기적이라고 할 수가 있죠. 30년 역사의 증인이 된 것은 30년 전에 갔던 베트남은 사실 제가 68년도 69년도에 군인으로 가있었거든요 전쟁. 그때 나라가 완전히 없어지고 식물인간으로 있을 때 봤던 음부, 지옥이라는 얘기는 너무 잔인하고. 지옥 가기전 ???하고 제가 첫 번째 기도 편지를 보냈어요. 그러고 나서 완전히 척박한 땅 그런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전무, 예수 믿는 사람이 없었어요. 다 250만 명을 숙청했고 그 다음에 교회를 다 없앴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통곡하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세요’하고 다니니까 그게 삼성사 것이오, 엘지 것이오. 그때 제가 통곡을 했습니다. 그렇게 전무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30년이 지난 뒤에 약 한 1.3-4% 됩니다. 기자) 비라카미 사랑의 선교회 본부장님으로 계십니다. 설립도 하셨구요.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비라카미잖아요. 이 4개의 나라를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하고 계신데 특별히 베트남에 거점을 두고 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A) 선교사가 되어서 선교를 하다보니까 직접 배워지는 것이, 아 선교는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부르신 성령님께서 하시는구나 철저히 깨달았죠, 그래서 그분이 제가 코마상태로 있을 때 병원에서 고치지 못하는 병이었잖아요? 근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치유 받을 때 거기서 하나님이 ‘니느웨로 가라. 니느웨가 어딥니까. 비라카미다. 비라카미가 뭡니까. 비라카미가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그 말씀을 들려주시면서 숫자까지 인구, 인구는 변화도 되지만 베트남 사람을 변화시켜서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로 보내라. 글서 비라카미 선교회를 만든 겁니다. 기자) 베트남은 교회설립이 어려운 나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특별히 공산권 국가로 교회에 대한 박해가 아직도 여전히 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느 정도입니까? A) 원래 공산주의 국가의 사상과 이념은 기독교의 사상과 이념과 상반 되잖아요. 그래서 거기 종교법 35조를 보면 교회를 세울 수 없다 그 다음에 51조에 보면 교회를 세울 수 없다. 종교 활동을 할 수 없다 이렇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그 법을 지켜가려면 하려면 아무 것도 못하죠. 그런데 아 내가 그 법을 지키러 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 10개월 동안 있을 때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게 있어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이 말씀을 가지고 제가 살았잖아요. 의사가 사형 선고 내린 걸. 그래서 그 말씀을 가지고 베트남 땅으로 가서 그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법을 위반하는 것이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그것이 제가 성육신하신 예수님께 배운 거죠. 예수님께서 율법을 지키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폐하러 오시기 위해서 율법의 제물이 되셨잖아요. 내가 공산주의 국가에 가서 그 법의 제물이 되어야 교회를 세울 수 있다, 이걸 깨달은 것이죠. 그게 코마 상태 때. 기자) 그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 불구하고 지금 현재 300개 가까운 교회, 얼마 전에 300번째 교회가 기공식이 있었죠. 그렇게 교회를 많이 세운 노하우가 있을 것 같습니다. A) 90년대부터 2000년 될 때까지는 그저 숨어서 몰래몰래 처소 교회를 세우다가 그 다음에 그 시에 인가를 내봤어요. 그런데 법이 안 된다고 그러는데 나와요. 아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구나. 만약에 그 공산국가의 공안이나 관공서에 있는 사람이 허가를 내준 게 아니고 이것을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치해서 해줬구나. 이렇게 믿음이 바뀌어지는 것이 저는 거듭난 선교사라고 얘기하죠. 그래서 아 가능하구나. 그래서 이제 그때부터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는데, 90년대부터 2000년도까지는 한 40개. 그 다음에 그것이 이제 더 늘어나기 시작한 이유는 2002년도에 클린턴 대통령이 베트남에 왔어요, 처음으로. 그래서 그가 이제 압력을 넣기 시작하죠. 그동안에 경제만 풀었는데. 개방, 인권, 종교, 정치, 문화 이것도 풀어라 그 압력이 들어왔지만 베트남이 안된다 우리는 경제만 풀겠다 그러면서 18도선 밑에 그 각서에 보면 클린턴 대통령과 레카피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공산당 서기장. 그 각서를 보니까 18도선 밑에는 종교를 허용해주겠다. 이것을 발견한 거죠. 그래서 선교사는 정보가 빨라야 해요. 그걸 가지고 세워나갔더니 잡아다 놓고 그냥 경고만 하고 교회는 허물지도 않더라구요. 그래서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구나’ 하면서 계속 세워나갔던 것이지요. 기자) 지금 말씀하신 교회 건축 외에도 또 다양한 선교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재 베트남 선교에서 가장 효과적인 어떤 선교 전략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원래 공산국가는 직접 선교가 안 되잖아요? 그래서 간접적인 선교로 그 하나님이 은사를 주셨던 것이 제가 신유의 은사였죠. 죽었다 살아나니까 그것도 군대 생활을 제가 위생병을 했어요. 그래서 병원선교, 의료선교가 간접적으로 참 좋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 병들고 아주 소외된 사람이 많았어요, 그 때 가보니까. 그들을 위해서 우리 한국에 있는 수영로 교회, 새문안 교회 의료팀들 불러다가 의료사역을 시작했죠. 그래서 만지는 거, 접촉이 있잖아요. 베트남에 가니까 접촉허가도 받아야 되고 여행 허가서, 친족 방문 등 아주 복잡해요. 처음에 가니까 그래서 의사들을 데리고 가서 의료선교 허가를 받으면 사람을 접촉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그들을 만지면서 치료해주면서 기도하면서 거기에는 하루에 한 2-300명을 치료해주다 보면 한 10퍼센트가 불치 환자가 있어요. 그들을 의사가 고치는 게 아니라 제 기도로. 그게 교회가 세워지는 거예요. 그 가정집에서. 참 신기하죠. 그래서 그 집에서 이제 예배를, 처소예배를 드리다가 허가를 내보는 거예요. 한 번 해보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갔으니까. 그럼 취소가 돼요. 또 해봐요. 그게 이제 끈기와 집념이죠. 선교사의 무기죠 그게. 그렇게 해서 하니까 그들도 해주더란 얘기죠. 그렇게 해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의료선교가 간접선교의 좋은 방법이구나 그걸 느꼈죠. 기자) 공산권 국가잖아요, 베트남이. 공산권 선교로서의 베트남 선교가 분단된 우리 현실 속에서 어떻게 보면 관심을 가져야 될 부분이 아닌가 싶은데, 선교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저도 그래서 탈북자들하고 그 다음에 이라고 혼혈아들이 있어요. 옛날 전쟁 때 그들을 데려다 키운 일이 있어요. 왜냐면 이들을 우리 북한에 보내보려고. 제가 키워서. 그렇게 했는데 잘 맞지 않는 게 뭐냐면 베트남은 공산주의 국가고 전통적인. 그들이 얘기하는 베트남의 공산주의자 얘기는 북한은 공산주의가 아니라고 그래요. 우리나라 북한을. 뭐라고 그러냐면 개인우상 독재국가라고 그래요. 그렇다고 잘 보시면 공산주의 국가들은 70년대 하나님의 역사로 동서냉전체제가 없어지기 시작해요. 그래서 중국도 개방하고 러시아도 나라가 되고 베트남도 이제 미국에다가 풀어 달라. 이러다보니까 경제를 개방하다 보니까 복음이 들어가요 따라서 사업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그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데. 북한은 절대 그렇지가 않아요. 북한은 우상, 독재국가기 때문에. 우상, 개인, 그가 종교를 아주 말살하고 지금도 핍박을 하잖아요. 그거는 참 복음 전하기 힘들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되죠. 공산주의 국가하고 북한은 다르다는 것이기 때문에. 기자) 요즘 중국선교가 많이 위축되고 있습니다. 반면에 베트남선교는 어느 정도는 이제 문이 열리고 있는 상황인데 세계 선교를 위한 베트남선교가 갖는 어떤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A) 정치적으로 보면 공산주의국가는 같은데 서로 원수예요. 중국과 베트남. 베트남은 러시아 편이거든요. 왜냐면 원래 베트남 땅을 뺏어 갔어요, 중국이. 그리고 중국이 과거에도 교인이 지하교인이 이렇게 개방이 돼있었죠. 최근에 와서 왜 핍박이 심하냐 하면 시진핑이 김정일 닮아가잖아요. 완전히 독재로 바뀌어가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종교도 다 쫓아내버리고 아마 북한하고 비슷하게 될 거예요. 그래서 중국이 이렇게 더 어려워지고 이다. 베트남은 특별히 미국에서 쿼터제를 없애고 무역을, 무역협정을 맺었거든요 WTO 가입을 2000년대에. 그러니까 선교사는 정치 경제 역사 문화 쪽 이걸 다 알아야 해요. 신앙만 해가지고는 안 된다는 걸 제가 깨달았어요. 기자) 베트남을 시작으로 이제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까지 선교영역을 생각하고 계십니다. 이 지역이 되면 이제 그 너머에는 인도가 있고 그 너머에는 이슬람권까지 있는데 중국의 선교가 어려워진다면 베트남을 통해서 이런 선교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A) 제가 배운 신학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선교가 유럽을 통해서 , 선교, 그다음에 청교도를 통해서 미국, 한국에 와서 이렇게. 와서 그렇게 그 핵이 있어요, 선교의. 그 성령의 핵, 성령의 운행이. 지금 베트남으로 들어왔다고 보시면 돼요, 제가 아니라 성령이. 그 다음에 라오스 캄보디아로 들어가게 되면 바로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되는 코스가 있기 때문에 그 주변 국가는 자동으로 성령에 연결이 되겠지만 그 핵을 따라가면 된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래서 사도바울이 시작했던 성령의 시작이 돌아서 유럽을 돌아서 미국으로 해서 우리 한국으로 와서 머무는 게 아니지요 성령은. 유럽 보세요. 지금 다 성령이 떠난 자리에서 ?? 내고 있잖아요. 그래서 여기서 지금 인도차이나를 지나가고 있으니까 머지않아서 미얀마까지는 복음이 확산될 거예요, 수년 내에. 그다음에 무슬림권은 그냥 통과한다고 봐요 예수님을 다 알기 때문에. 주님께서 떠나실 때 ‘내가 다시 이 땅에 올 때는 예수 이름이 다 알려질 때 오겠다’ 그랬거든요, 온 열방에. 그런데 지금 북한, 아니 공산국가가 다 예수를 알잖아요. 제가 있는 곳은 이제 캄보디아, 미얀마가 문제예요. 근데 그 쪽에 이제 곧 성령이 임재하시게 되면은 이제 바로 무슬림권으로 사우디 아라비아 통해서 예루살렘에 들어가면은 마지막 주님의 재림이 오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기자) 베트남선교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는데 그러면 이제 베트남 선교를 보다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한국교회가 할 수 있는 어떤 과제나 역할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A) 한국교회가 베트남에 사실 많은 물질로도 도와주고 그러지만 오히려 베트남 경제가 우리보다 앞서갈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요, 지금. 그래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그런 현상이 70년대 현상이라고 그러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고요. 또 제가 이제 경영학을 했기 때문에 사이클을 보면은 2000년대 지금 바짝 따라오고 있어요. 어떤 부분은 앞서가는 것도 있다. 하나 비유하자면 호치민에 84층짜리 빌딩들을 세웠어요. 우리나라에는 그런 게 없잖아요. 하노이에는 120층짜리 세워지고. 그리고 하노이에 그 열대 지방에 실내 아이스하키까지 세워지고 또 지하철도 세워지고. 이런 걸 보면은 경제는 벌써 앞서가요. 다시 말해서 7-80년대 우리가 가난하고 보릿고개 때, 어려울 때 베트남은 폭스바겐 타고 다녔어요. 그렇게 잘 살던 나라가 이제 경제 회복이 되고 있으니까 그것은 제가 봤을 때 벌써 하나님을 알게 되는 베트남이기 때문에 경제도 따라간다 이렇게 생각하고. 우리 한국에서 그걸 지원한다고 하는데 물질보다도 사실 이렇게, ‘선교는 순교다’라고 생각하고 일사각오로, 한 사람이 죽어서 밀알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살아나요. 그런 몸으로 선교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뭐 뒤에서 후원도 이제 어렵고 한국에서는. 경제가 어려우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생명을 바쳐서 사도바울처럼 그 땅에 가서 내가 죽음으로 인하여 수많은 열매들이 맺어진다는 그런 사명의식 순교자적인 정신 일사각오로 오는 그런 선교사들을 파송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기자) 지금 베트남이 공산화 국가인데 그 공산권 국가인데 베트남이 공산화된 시점 70년대와 지금 한국의 모습이 비슷하다 그런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A) 저도 동감하는데요. 저는 60년대 군대생활을 거기서 했다고 그랬죠. 그때 잘 살던 나라, 월남. 그런데 게릴라 전쟁이 10년 동안 있었죠. 결국에는 월남이 망했고 미국도 철수하고 우리 한국도 철수했잖아요. 그 나라 공산화 된 것을 보게 되면 우리나라와 똑같다는 얘기를 저도 합니다. 와서 보면 불감증이 걸려있어요 잘 살다 보니까 정치나 여러 가지 어려운 것을 못 느끼고 있어요. 그런데 70년대 베트남은 어땠냐 월남 많이 타락했죠. 잘 살다 보니까. 월맹은 굉장히 아주 어려웠었고 우리 북한처럼. 그런데 이들은 오직 공산주의 사상과 이념을 해서 적화통일 베트콩들이 남쪽에, 대통령궁 ??대통령궁에 3분의 2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우리나라도 이제 공산화가 되고 있다는 것을 나도 염려해서 와서 얘기해보면은 우리가 더 많이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설마 설마 그래요. 그런 걸 보면서 참 베트남 땅 가서 일을 하면서도 만약에 우리나라가 그렇게 된다면은, 그럴 리 없겠죠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는 믿음으로. 그런데 그렇게 되면은 국적이 없어져버려요. 베트남이 우리를 좋아하는 이유가 한국에 옛날 새마을운동 경제발전 올림픽 이런 걸 좋아하거든요. 근데 오히려 베트남은 하이랭크예요. 제가 하이랭크들을 많이 알죠. 장관 안기부장관 자주 만나거든요. 오히려 저보다 더 걱정이에요. 당신들 나라 공산주의 되지 않느냐고. 그래서 그런 것들을 보면서 아마 그런 얘기들이 나온 것 같아요. 70년대와 비슷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줄로 믿습니다. 기자) 예. 기도 많이 해야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 질문 드리겠습니다. 선교를 준비하는 많은 예비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이 예비 선교사 분들께 조언의 말씀 한 말씀 해주십시오. A) 우리가 직접 선교사를 훈련시키죠. 1년에 한 번씩 시키는데 우리 예비 선교사들에게 하는 얘기는 그거죠. 나를 따르려면은, 나, 사도바울이 닮아가는 것처럼 내가 부족하지만 나를 따르라 그렇게 얘기하죠. 왜냐면 나무관에서 자고 가족도 버리고 오직 베트남 영혼만을 죽도록 사랑한 것이 그게 선교사다. 그 끈기와 책임을 지며 여기서 한번 뿐인 인생인데 여기서 어떻게 우리가 영생 가느냐. 그러면 부름 받은 자는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 해서 우리가 그렇게 훈련을 8주를 시키고 이론으로. 그리고 현장에서 2년 시킬 때 제가 그런 모습으로 그대로 같이 지내다 보니까 이제 도태되고 나간 사람은 원망하죠. 어떻게 가족도 버리고 베트남을 사랑할 수 있느냐. 그런데 성경에도 있어요. 배도 놓고 그물도 놓고 부친도 버리고 그 다음에 전대도 메지 말고 신발도 신지 말고 두 벌 옷도 가져가지 말고. 그것을 제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저는 그것 때문에 제가 이렇게 한 거죠. 왜냐면 인생의 전반전은 잘 나갔던 사람이에요. 하프타임. 식물인간 10개월 있을 때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놨어요. 그래서 여기 올 시간은 있지만 집에 갈 시간은 없잖아요. 오늘도 또 베트남에 들어가야 돼요 지금. 그러니까 제가 사는 게 아니라 제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끌고 가다 보니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다는 말이죠. 기자) 네 선교사님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베트남은 물론이고 라오스, 캄보디아까지 (미얀마) 미얀마. 타종교권의 복음화를 위해서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하시는데 앞으로도 세계 선교를 위해서도 더 많은 활동 있으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
|||||
이전
|
2019-08-02 |
||||
다음
|
2019-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