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CTS지역방송의 운영위원 목사님들이
전하는 지혜의 말씀 5분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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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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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방 : 5:40
- MC : CTS 지역방송
CTS지역방송의 운영위원 목사님들이 전하는 5분 에세이 프로그램입니다. 풍성한 예화와 지혜의 말씀이 성도들의 삶을 촉촉히 적셔 줄 것입니다.
처음 사랑 (제3울산교회)
- 방송일 : 2008-08-21
- 조회 : 591
처음 사랑
이런 글이 있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는 지혜라는 글인데, 훌륭한 인물이 되고, 중요한 과업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마음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첫째는 초심, 둘째는 열심, 그리고 셋째는 뒷심이라는 겁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마음이 초심이라고 합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가운데 에베소 교회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처음 사랑을 잃어 버렸다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납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에베소 교회에게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촛대가 옮겨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글에서 초심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초심 속에 열심과 뒷심이 담겨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초심에서 열심히 나오고, 초심을 잃지 않을 때 뒷심도 나온다는 겁니다.
초심이란 무슨 일을 시작할 때 처음 품는 마음이라는 거죠. 처음에 다짐하는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첫 사랑의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겸손한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순수한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배우는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견습생이 품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초심이란 동심이라는 거죠. 피카소는 동심을 가꾸는 데 40년이 걸렸다는 겁니다.
그럴 때에 초심을 잃지 않는 가장 지혜로운 일은 영원한 초심자로 남는 다는 거죠. 우리가 무엇이 되고, 무엇을 이루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한 때임으로 그럴 때, 점검해야 할 마음은 초심이라는 겁니다.
초심을 상실했다는 것은 교만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마음의 열정이 식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마음을 관찰하고, 초심과 얼마나 거리가 떨어져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초심은 날마다 가꾸지 않으면 안 되며, 초심은 촛불과 같아서, 전등은 가꾸지 않아도 되지만 촛불은 가꾸지 않으면 쉽게 꺼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일반적 사람들의 삶에도 이런 초심을 유지하려고 하는 노력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는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맺었던 처음 사랑이 있는 자들입니다.
이 처음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참 가치를 발견하게 했고, 그 사랑에 눈을 뜰 때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자인지,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얼마나 큰 죄인인지, 또 주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영원토록 이 사랑 안에 살게 해 달라고 소원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의 능력으로 주를 향한 열심을 품고 살았습니다. 주의 사랑이 내 안에 없을 때,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며 증오하고 살았지만, 어느새 그 사랑이 나를 덮어, 우리는 그를 사랑하며, 용서하며 살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말씀이 그리웠고, 교회가 그리웠고, 주의 백성이 그리웠습니다. 하루가 멀게 느껴졌고, 주일이 속히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이 처음 사랑이 나를 행복하게 했고, 눈물나게 했으며 모든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게 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와 같이 어느 새, 세월이 흐르면서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지혜자로 살지 못하고, 그만 나의 열심과 뒷심만을 가지고 살려고 하는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내 속에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는 없어지고, 나의 노력과 수고에 대한 자랑과 나의 성공에 대한 자랑만이 나를 주장하고, 원망과 시기와 다툼과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한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이 무엇이며, 눈물이 무엇이며, 기쁨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일에 대한 기대감이 없는 자로 살고 있습니다. 혹시 내가 이런 사람은 아닌지요?
주님이 에베소 교회에 주셨던 그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값진 것이 되고, 주를 향한 고백의 마음이 진실한 고백이 되기 위해서는 처음 사랑을 잃지 않는 것일 겁니다. 처음 사랑을 잃지 않는 지혜자는 언제나 매일의 삶에서 나를 점검하고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않도록 낮추는 자일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삶의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는 지혜라는 글인데, 훌륭한 인물이 되고, 중요한 과업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마음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첫째는 초심, 둘째는 열심, 그리고 셋째는 뒷심이라는 겁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마음이 초심이라고 합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가운데 에베소 교회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처음 사랑을 잃어 버렸다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납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에베소 교회에게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촛대가 옮겨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글에서 초심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초심 속에 열심과 뒷심이 담겨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초심에서 열심히 나오고, 초심을 잃지 않을 때 뒷심도 나온다는 겁니다.
초심이란 무슨 일을 시작할 때 처음 품는 마음이라는 거죠. 처음에 다짐하는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첫 사랑의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겸손한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순수한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배우는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견습생이 품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초심이란 동심이라는 거죠. 피카소는 동심을 가꾸는 데 40년이 걸렸다는 겁니다.
그럴 때에 초심을 잃지 않는 가장 지혜로운 일은 영원한 초심자로 남는 다는 거죠. 우리가 무엇이 되고, 무엇을 이루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한 때임으로 그럴 때, 점검해야 할 마음은 초심이라는 겁니다.
초심을 상실했다는 것은 교만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마음의 열정이 식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마음을 관찰하고, 초심과 얼마나 거리가 떨어져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초심은 날마다 가꾸지 않으면 안 되며, 초심은 촛불과 같아서, 전등은 가꾸지 않아도 되지만 촛불은 가꾸지 않으면 쉽게 꺼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일반적 사람들의 삶에도 이런 초심을 유지하려고 하는 노력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는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맺었던 처음 사랑이 있는 자들입니다.
이 처음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참 가치를 발견하게 했고, 그 사랑에 눈을 뜰 때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자인지,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얼마나 큰 죄인인지, 또 주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영원토록 이 사랑 안에 살게 해 달라고 소원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의 능력으로 주를 향한 열심을 품고 살았습니다. 주의 사랑이 내 안에 없을 때,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며 증오하고 살았지만, 어느새 그 사랑이 나를 덮어, 우리는 그를 사랑하며, 용서하며 살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말씀이 그리웠고, 교회가 그리웠고, 주의 백성이 그리웠습니다. 하루가 멀게 느껴졌고, 주일이 속히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이 처음 사랑이 나를 행복하게 했고, 눈물나게 했으며 모든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게 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와 같이 어느 새, 세월이 흐르면서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지혜자로 살지 못하고, 그만 나의 열심과 뒷심만을 가지고 살려고 하는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내 속에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는 없어지고, 나의 노력과 수고에 대한 자랑과 나의 성공에 대한 자랑만이 나를 주장하고, 원망과 시기와 다툼과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한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이 무엇이며, 눈물이 무엇이며, 기쁨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일에 대한 기대감이 없는 자로 살고 있습니다. 혹시 내가 이런 사람은 아닌지요?
주님이 에베소 교회에 주셨던 그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값진 것이 되고, 주를 향한 고백의 마음이 진실한 고백이 되기 위해서는 처음 사랑을 잃지 않는 것일 겁니다. 처음 사랑을 잃지 않는 지혜자는 언제나 매일의 삶에서 나를 점검하고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않도록 낮추는 자일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삶의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