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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와 츠빙글리 무엇이 달랐나
- 방송일 : 2019-09-20
- 조회 : 5243
앵커: 마틴 루터와 울리히 츠빙글리, 각각 독일과 스위스의 종교개혁가로 알려진 이 두 개혁가는 성경 중심의 신앙생활을 강조했는데요.
앵커: 스위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유럽의 개신교 언론들은 츠빙글리의 업적을 소개하면서 루터와의 관계를 재조명했습니다. 두 개혁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베를린에서 김영환 통신원입니다.
1517년. 종교개혁의 기치를 들어 올린 마틴 루터.
그로부터 2년 후인 151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종교개혁을 이어받은 울리히 츠빙글리.
두 종교개혁가는 개혁의 시기만 비슷할 뿐, 서로 다른 가치를 주장했습니다.
루터는 자신의 신앙 문제 때문에 종교개혁에 접근했다면, 츠빙글리는 고통당하는 민족의 문제를 고민하며 종교개혁에 이르렀습니다.
스위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유럽의 개신교 언론 에반겔리컬 포커스가 루터와 츠빙글리의 차이점을 소개했습니다.
예배, 세례, 말씀과 성찬의 관계 등 총 10가지 항목을 분석했습니다.
츠빙글리는 스위스 연합만으로는 힘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독일의 종교개혁 세력과 연대를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츠빙글리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녹취) 프레드 다나 목사
루터는 가톨릭과의 화해를 염두해 두고 있었기 때문에 개혁 세력과는 연대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의 교세가 독일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등 정치적 상황이 급변하자, 루터와 츠빙글리는 개혁 연대를 위해 마르부르크에서 마주 앉게 되었습니다.
치열한 논쟁을 벌인 끝에 두 사람은 많은 부분에서 이견을 좁혔지만, ‘성찬론’에서 입장 차이를 보였습니다.
츠빙글리는 “성찬은 구원을 선포하는 기념 예식”으로 보았지만, 루터는 떡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협상은 결렬되었습니다. 독일과 연대를 이루지 못한 츠빙글리는 1531년 가톨릭의 기습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로인해 스위스 종교개혁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날 회담의 결렬은 기독교 역사에 가장 안타까운 사건으로 남았습니다.
베를린에서 CTS뉴스 김영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