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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종소리
새벽종소리는 매일 새벽마다 다양한 테마의 큐티를 성도님의 메일함에 매일 새벽 배달하는 서비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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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0일 (금)
오늘말씀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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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왕후 와스디도 아하수에로 왕궁에서 부녀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라
10. 제 칠일에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어전 내시 므후만과 비스다와 하르보나와 빅다와 아박다와 세달과 가르가스 일곱 사람을 명하여
11.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 왕후의 면류관을 정제하고 왕의 앞으로 나아오게 하여 그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방백들에게 보이게 하라 하니 이는 왕후의 용모가 보기에 좋음이라
12. 그러나 왕후 와스디가 내시의 전하는 왕명을 좇아 오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중심이 불 붙는듯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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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해석
에스더 시대 바사 왕 아하수에로는 아주 잔인한 폭군이었습니다.
바사(페르시아)의 역사를 보면 아하수에로 때가 가장 전성기였습니다. 따라서 아하수에로는 폭군이면서도 매우 유능한 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고레스와 다리오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사람인데, 고레스는 남 왕국 유다를 정복한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바벨론으로 잡혀갔던
유대인 포로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낸 사람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지만 개중에는 이미 70년간 그 곳에서 살았으므로 돌아가고 싶지만 떠날 수 없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에스더서는 바로 그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유대인들에게 닥친 일생일대의 위기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당시 아하수에로 왕이 다스린 땅은 <인도로부터 구스까지 백이십칠 지방>(1절)이었습니다.
인도에서 아프리카 북부 지방을 뜻하는 구스까지는 5천km가 넘습니다.
그런데 이렇듯 거대한 지역을 통치하는 아하수에로 왕에게는 <와스디>라는 아름다운 왕후가 있었습니다.
와스디는 아하수에로의 첫 부인으로 에스더가 왕비가 되기 전의 왕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쫓겨나 비극적인 삶을 삽니다.
<왕후 와스디는 내시가 전하는 왕명을 따르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마음속이 불붙는듯 하더라>(1:12).
왕이 자신이 벌이는 잔치 자리에 참여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왕후 와스디가 이를 거절한 것입니다.
폭군의 명령을 거역하면 어떻게 된다는 사실을 와스디도 잘 알고 있었을 텐데 그는 끝내 잔치 자리에 나가는 일을 거역했습니다.
<왕후의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지방관들에게>(11절) 과시하고 싶었던 왕의 체면이 완전히 구겨진 것입니다.
왕후 와스디는 이렇듯 자기의 주관이 뚜렷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왕후의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지만 그 사건 배후에도 엄연히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었음을 놓치지 마십시오.
그로 인해 에스더가 등장하고, 에스더가 와스디에 이어 대국 바사의 왕후가 되므로 유대인이 집단학살을 면하는 놀라운 반전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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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과 적용
-왕후 와스디가 아하수에로 왕의 명을 거역한 이유는?
-고레스 왕과 다리오 왕에 대해 아는대로 적어 보십시오.
-고레스 왕이 유다 포로들을 해방했음에도 일부 유대인들이 귀환하지 않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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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주님, 70년이란 긴 포로생활이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 포로지에 뿌리를 내리게 했습니다.
타국이고 타향이었지만 오랫동안 그 곳 문화에 적응한 결과 많은 사람들이 귀환을 포기하고 그냥 그 포로지에 눌러 살게 된 것입니다.
세상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오늘 저희들도 그렇게 세상에 적응하며 세상과 짝하며 세상에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돌아 갈 본향이 따로 있고, 지금은 엄연히 나그네 생활 중임을 잊지 않고 사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
더 보기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
시인 정호승 님의 시 「꽃을 보려면」 입니다.
미쳐야 보이는 세상이 있습니다.
죽도록 달려야 보이는 세상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다려야 보이는 세상도 있습니다.
버려야 보이는 세상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를 내려놓고 그가 되어야 보이는 세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기 위해 인간이 되셨습니다.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셨고, 죄인 대신에 십자가에 죽어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공감을 넘어 “우리와 같이 되신 사랑!”을 주신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고 꽃으로 피어나게 되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2:5-8)
그림 큐티
더 보기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for everyone born of God overcomes the world. This is the victory that has overcome the world, even our faith.
도서 큐티
더 보기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소원이 있으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늘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여러분은 항상 기뻐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말 항상 기뻐하며 사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요?
-작자미상의 글 ′감사로 드리는 제사′에서-
항상 기뻐하며 살 수만 있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고 정말로 믿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말씀하실까요?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항상 기뻐하며 사는 일이 가능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물론 항상 기뻐하며 사는 일이 인간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할 수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이 ‘항상 기뻐하라’말씀하셨으니
그것이 가능한 일 아니겠습니까?
데살로니가전서 5:18절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그 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