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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회고록 - 북방 서유기 10장 극한의 대지 [압하지야 우동수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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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20-08-14
선교회고록
제 3부 ‘시베리아 그 혹한의 땅에서’
“그가 외쳐 내게 일러 가로되 북방으로 나간 자들이 북방에서 내 마음을 시원케 하였느니라 하더라” (스가랴 6:8 개역)
10장 극한의 대지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이사야 40:8)
시베리아! 지구 상의 가장 척박한 대지의 대명사로 우리의 뇌리에 언제나 살아있는 땅이다. 이 단원을 시작하려니 그야말로 온갖 기억이 뇌리를 스친다. 러시아 불후의 위인들을 길러낸 대지에서의 18년의 삶이 있었다. 그 풍상의 기억을 떠올려 길어내는 것은 또다른 하나의 시련이다. ‘말 없음’이 그 땅의 결론이니… 아니면 솔체니친의 ‘수용소 군도’처럼 대하 장편이 되어야 할 것을 한 단원으로 줄이자니 이 또한 고통이다.
그곳은 삭풍이 옷깃을 매섭게 파고들고, 눈과 얼음으로 일년의 절반 이상이 뒤덮여 있다. 또 이 지구상의 가장 광활한 땅이다. 비행기를 타고 횡단하여도 그저 보이는 것은 흰색과 녹색의 바다. 그러나 극한의 대지에서 인간은 자신의 실체와 부딪쳐 깨어난다. 거기서 영원을 향한 위대한 혼은 탄생한다. 거기에 가식과 얄팍한 속물근성은 어울리지 않는다. 투박하지만 근원을 향한 추구와 삶에의 원색적인 열정으로의 초대가 그 대지에 있다.
다시 시베리아에 섰다. 3년 만의 귀환이다. 아무리 해도 손에 잡히지 않던 글을 이제 다시 시베리아의 중심에서 시작한다. 창으로 눈을 드니 바로 한 여름의 녹색의 지평선이 들어 온다. 터진 하늘은 끝이 없다. 시베리아로 돌아와 건축하고, 사역했던 선교센터에 머무르려니 지난 겨울의 한파로 마당 콘크리트가 깨어지고 갈라져 물이 스며드는 지하와 기울어진 마당의 외벽공사가 기다리고 있다.
겨울의 영하 수십도의 한파는 지하 2.5미터까지 땅을 얼린다. 물기를 머금고 있던 땅은 얼면서 부피가 늘어나 솟아오른다. 겨우 내내 영하의 온도로 쌓여 있던 눈은 봄이 가까이 오면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수차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대지의 표면은 말 그대로 갈가리 찢어지고 만다. 시베리아 평원에서는 돌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미세한 먼지 같은 흑토로 이루어진 땅이다. 밑으로 몇 미터를 파들어가도 왕모래 하나 걸리는 것 없이 푹푹 파여지는 땅이다. 여름이 되어 흙이 드러나면 그 대지는 두가지 모습을 한다. 비가 내리면 완전히 걸죽한 죽과 같은 진흙땅이다. 물기가 마르고 나면 흙먼지 바람이 일어나 검은색의 흙가루로 세상이 뒤덮인다. 이렇게 땅이 녹아내리는 대지 위에서의 인간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시베리아의 뿌리*
러시아 코사크의 시베리아 동진
‘시베리아’ 이 단어는 아마도 오늘의 한국사람들에게 우선 바이칼호수와 이르쿠츠크를 떠오르게 하는 것 같다. 춘원 이광수의 소설의 배경이 되었고, 일제시대 한민족의 수난의 시기에 가장 멀리 광복군과 연관되었던 인연 때문이리라! 그러나 이르쿠츠크와 바이칼은 제정 러시아의 동방 정복을 위한 한 거점으로 시베리아의 뿌리와는 거리가 멀다.
모든 인류의 삶과 문명이 그렇듯이 시베리아의 역사와 전개도 대지의 젖줄인 강을 따라 이루어졌다. 시베리아의 원명인 ‘시비리’는 우랄산맥 동쪽 인근의 오비강의 서쪽 지류에 위치한 15, 16세기 당시 시베리아의 종주였던 키르키즈족의 중심도시를 연원으로 한다. 러시아 슬라브계의 자유민이었던 군사집단 카자크에 의해 우랄 동편의 땅이 정복되기 시작할 때 처음으로 충돌했던 저항의 상징이 ‘시비리’였고 이것이 러시아인들의 뇌리에 깊이 박히게 되어 우랄 동편의 러시아에 의해 정복된 전 아시아 지역의 지명이 되었다. 이의 영어식 발음이 ‘시베리아’로 이렇게 온 세계에 이 땅이 시베리아로 불리게 된 것이다.
현재의 시베리아의 탄생은 이처럼 러시아인의 광활한 대륙 동쪽을 향한 식민지로의 진출이 배경이다. 러시아인들의 정복의 대상은 한때 시베리아의 종주였던 키르키즈족과 몽골계의 피가 흐르는 땅이다. 시베리아는 인간의 자연을 향한 투쟁과 겹쳐, 주류 세계사의 뒤편에서 치열하게 전개된 유럽과 아시아의 대결과 그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유라시아 대륙은 지구의 한 복판으로 그 가장 광활한 대지인 시베리아는 바로 이 대륙 곧 세계의 흐름을 반영한다.
한때는 징기스칸의 몽골이 이 땅의 주인으로 세계를 휩쓸기도 했고, 이제 400년이 넘게 슬라브계의 종주 러시아가 그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영미세력이 대양의 종주로 세계를 지배하는 시절 러시아, 소련은 이 대륙의 힘의 중심이 되었다. 바로 세계는 지난 세기 이 두 세계제국의 경쟁의 터가 되었다. 지난 세기 말에 이 세력의 균형이 잠시 기우는 듯 했으나 21세기에 들어서며 대륙세력은 중국의 부상과 러시아의 회복과 재등장에 힘입어 다시 세계사의 중심에 그 얼굴을 내밀고 있다.
시베리아는 아주 오랜 시절부터 샤머니즘, 정령 숭배의 땅이다. 시베리아 원주민은 옛 흉노, 지금의 터키계보다 더 북방에 자리 잡은 몽골계 인종이다. 그러나 몽골, 타타르, 흉노는 혼혈의 과정을 거치며 여러 북방 시베리아의 소수민족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 모두를 아우르는 혈통적인 일치는 ‘알타이 어족’으로 불려진다.
또 알타이 어족으로 명명되는 모든 북방계 민족들의 종교적 공통분모는 샤머니즘이다. 현재는 비록 수니파 이슬람, 북방불교인 티벳 전승의 라마교, 한국의 선불교, 기독교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다양해졌지만 그 뿌리의 근저에는 대지에서 혼의 존재를 느끼고 이를 숭배하는 정령숭배의 동일한 배경을 갖고 있다.
시베리아는 우랄산맥 동쪽의 러시아의 아시아 전 지역을 통칭하기도 하지만 구체적으로는 극동지역을 제외한 오비와 예니세이강 유역을 가리키는 지명이다. 위도와 동서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겨울은 섭씨 영하 40-60도의 최저기온을 보이고, 여름은 짧지만 영상 30도를 넘나드는 더위를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2012년 여름은 영상 40도를 넘는 날들과 가뭄이 이어져 숲이 자연발화로 타들어가 자욱한 연기가 온 시베리아를 뒤덮기도 했다. 한마디로 인간의 평상과는 조화될 수 없는 극한과 극서의 땅이다.
또 대지는 강들의 지류를 따라 이어진 끝없는 서시베리아의 지평선과 동시베리아의 구릉들의 숲, 늪지, 초원의 흐름이다. 광활한 대지 위의 자연 한 가운데서 그 옛날 작은 인간의 무리들이 느꼈을 무력감, 절망감과 함께 다가온 자연을 향한 경외와 순응의 정서를 떠올리며 자연의 권세 앞에 두려워하며 경배했을 이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오늘날도 시베리아에 산재한 몽골계 20여 원주민 민족들에게 샤머니즘은 그들의 종교적, 민족적 정체성의 뿌리가 되고 있다. 이들의 집단거주지에는 시골에서 도시에 이르기까지 요지에 한국의 성황당과 같은 돌무더기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각 마을에는 샤먼(무당)의 집들이 있다. 그리고 전통축제에는 반드시 제전의 주관자로 이들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오랜 지배민족의 종교와 무신론 공산주의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시베리아의 혼은 오늘도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근대에 이르러 인간이 신의 위치에 올라서는 서구의 대전환, 영적 타락이 일어났다. 시베리아도 그 극단 무신론 공산주의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갔지만 이 땅은 오랫동안 인류의 영적 젖줄이 되어 왔다. 물론 20세기 세계 역사를 뒤흔든 소련 공산당 무신론혁명의 태두인 레닌도 시베리아를 거쳐 갔다. 그러나 근대 말 서구의 영성이 순식간에 무너져내릴 때 유형지 시베리아에서 거듭난 도스토예프스키는 곧 앞으로 다가올 무신론 광분의 세기를 예견하고, 그 광란의 도가니 러시아로부터 서구를 거쳐 온 인류의 영적 시야를 밝혀준 등불이 되었다.
아무튼 시베리아가 현대 인류역사의 모태가 된 것을 이 두 인물의 시베리아 유형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심지어 공산주의의 그 광분의 시절에도 시베리아의 강제노동수용소를 거쳐간 솔제니친은 다시 한번 20세기 후반에 세계의 영적 현실을 울리는 선지자의 소리가 되었다.
시베리아의 대지와 자연의 그 위대함 앞에 설 때 인간은 영적인 눈을 뜨고 영적 세계를 향해 영혼으로 일어선다. 이 시대에 다시 북방이 일어서는 기지개 소리가 들린다. 물질세계가 아닌 영적 세계를 향한 갈증이 세상을 뒤덮고 있다. 샤머니즘의 원산지인 시베리아, 그 영혼의 깊이 가운데서 다시 세상을 깨우는 등불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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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유목민족 원주민
*길고도 추운 시베리아의 겨울*
사할린에서 시베리아로 가족과 함께 이주한 1992년의 기억이 새롭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올 것 같지 않던 사할린의 봄을 맞은 6월 중순에 시베리아의 중심도시인 노보시비르스크로 이주 준비 차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이제 막 시베리아의 야생능금나무의 잎이 도시 곳곳에서 피어나는 철이었다. 더위가 빨리 닥칠 때는 5월 중에도 능금 꽃이 피기도 하지만 그해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렸던 것 같다. 5월이 지나면 도시의 중앙난방도 꺼지고, 겨우내 실내에서 누렸던 온기도 동시에 사라진다.
그러나 그때에 속절 없이 내리는 눈을 보자니 실로 시베리아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난방도 꺼지고, 전열기구 하나 없는 호텔 방에서 얇은 담요 한장을 덮고 온 밤을 오들오들 떨며 지새운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는 8월 말이면 첫 눈이 내리기도 하니 온전한 여름의 온기는 겨우 두 달 남짓이기가 십상이다. 그나마 때때로 어느 해에는 온 여름이 비가 오고 흐려 아예 여름이라고 할 날이 없이 지나가는 때도 있다. 바로 2013년 올 해가 그런 여름이었다.
그래서 비록 순간으로 지나치는 사시사철이 있다 해도 시베리아에서의 삶은 겨울의 추위를 대비하고 이를 이겨내는 시간의 연속이다. 순간으로 지나치는 여름 한 철에 수목도 바삐 잎을 내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기에 분주하다. 그래도 여름에는 높은 위도 때문에 북극권 시베리아에서는 아예 해가 지지 않기도 하고, 남시베리아도 저녁 11시가 넘어야 어둑해진다. 겨울에는 오전 10시가 되어야 훤해지고, 오후 3시가 지나면 벌써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름에는 12시가 되어야 밤이 되고, 새벽 3시가 지나면 벌써 동이 튼다. 여름 한 철 아이들은 저녁 11시까지 밖에서 뛰어놀기가 일쑤다.
이 여름을 대비해 텃밭의 작물은 대지에 온기가 찾아들기 오래 전부터 난방의 열기가 있는 집 안의 창틀에 햇빛을 받도록 모종을 미리 심어 놓고, 땅이 풀려 옮겨심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나 옮겨 심어진 토마토며 작물은 채 여물기도 전에 파란색으로 수확해서 실내 난방의 온기를 의지해 익혀야 하는 것이 일상이다. 여름 한철 잠깐 나오는 오이며 토마토, 버섯, 열매 등 신선한 야채들은 재빨리 소금이나 설탕에 절여 피클이며 잼의 형태로 저장을 서둘게 된다.
러시아 피클
그러나 우리의 김치담그기가 초년병 주부나 외국인에게 쉬운 일이 아니듯이 우리 가족의 이주 초기에는 이런 시베리아의 겨울 준비가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시베리아 이주 다음 해에는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 오이 피클을 마련했던 일이 있었다. 시장에서 오이를 사고, 이를 담을 3리터짜리 병을 마련해서 20병 정도의 피클을 담았다. 그때는 조선배추나 무우 등 김치거리를 구할 형편이 되지 못해 절인 오이로라도 김장을 대신해야할 형편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겨우내내 양배추김치 말고는 구경할 거리가 없는 형편이었으니까… 물론 혼자로는 안될 일이라 현지분의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겨울이 되어 뚜껑을 열어보니 모두 다 물러터지지 않았는가! 잘못된 소금을 사용했던지, 유리병의 소독을 제대로 하지 않아 그안에 있던 박테리아가 문제를 일으킨 것 같았다. 러시아의 소금은 바닷물을 말려 제조한 것이 아니라 광산에서 캐낸 것이므로 여러 유기물질이 섞여있어 이를 잘 분별하지 않으면 이런 일이 예사로 일어난다는 것을 그 후에야 알았다. 또 병을 소독하기 위해서는 물과 세제로 잘 씻는 것만 가지고는 되지 않는 것을. 유리병을 깨끗이 씻은 후에는 오븐을 뜨겁게 가열해 몇 분 동안 고온에서 살균 소독을 거쳐야 한다. 또 최근에야 병을 밀폐하기 전에 아스피린 하나씩을 넣어야 한다는 비방을 알게 되었다.
육식을 주식으로 하는 러시아인들에게는 겨울을 대비한 육류 저장이 또하나의 큰 일이다. 당시에는 시장에서야 고기를 구할 수가 있었는데 도끼로 뼈채 조각조각 잘라 파는 것을 포장도 없이 사야하는 형편이었다. 아직 플라스틱 용기나 비닐봉지도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리고 시골에서 가축을 기르는 이들은 겨울의 혹독한 영하의 날씨가 닥치기 전에 도축해서 저장하고, 여분은 내다파는 것이 보통이다. 또 이때는 일시에 도축해서 처분해야하기 때문에 시장에서 조금씩 사는 것보다 훨씬 싼 가격에 고기를 살 수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시골에서 직접 키워 도축한 고기는 최소 반마리씩은 사야하는게 문제였다. 당시는 한국인으로 그곳에서 사는 가정이 없었으니 나눌만한 형편도 아니었다. 물론 고기를 이렇게 산다해도 냉동고에 저장할 방법은 없었다. 그렇게 큰 냉동고는 찾아 볼 수 없고, 집 안에 들여놓을 방법도 없으니까. 그러나 시베리아에서는 이게 문제가 안되는 일이니 재미있다. 시베리아의 가장 일반적인 거주 형태인 아파트에는 외부로 개방된 베란다가 있고, 이 베란다는 일년의 절반인 겨울 동안 냉동고가 되니 그저 거기 던져 놓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소 반마리를 어찌해 들여놓고 겨우내 도축공이 되어 도끼와 칼로 소를 잡아먹던 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중앙난방이 가동하고 건물들이 모여있는 도시에서의 겨우나기는 나름 편한 면도 있다. 24시간 도시중앙난방이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이겨낼 수 있도록 뜨겁게 작동하니 오히려 한겨울 시베리아의 실내는 따뜻하다고 하겠다. 아주 추운 날들이 닥치지 않으면 반팔 옷으로 실내에 있는 것이 적당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나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시베리아의 삭풍과 눈보라가 순식간에 집채와 마을을 삼킬 것 같은 기세다. 실로 하루 밤만 자고 나면 사람 한길도 더 되는 높이의 눈더미가 온 마당에 쌓이고 지붕을 뒤덮는 일이 일상이다. 도시에서도 마당이 있는 집이라면 겨우내내 이 눈과의 싸움은 그칠 날이 없다. 그래서 시베리아의 시골은 이전처럼 강제로 집단농장을 국가에서 운영하는 일이 사라지면서 인적이 없어져 버려지는 땅이 되었다.
또 그 광활한 땅에 지은 아파트며 집들이 너무나 규모가 작아 처음에는 어리둥절하기도 했었다. 평균적으로 보자면 지금 한국의 아파트나 집의 크기의 절반이 채 안되는 형편이다. 땅은 버려질 정도로 끝도 없으나 그 춥고 긴 겨울을 지낼 난방을 감당하는 것이 막대한 일이기 때문이다. 11월이 되면 남시베리아에도 영하 30도의 추위가 몰아 닥치기 시작한다. 12월 말을 지나 1월에는 극심한 한파가 기승을 부려 어떤 해는 비교적 시베리아의 남부에 위치한 노보시비르스크에도 1월 내내 영하 40-50도의 추위가 이어지기도 한다. 물론 북시베리아는 매년 겨울 영하 60도를 넘나든다. 이렇게 한파가 기승을 부리는 철이 되면 식구들은 집안에서 제일 따뜻한 방으로 모여들어 함께 지내며 추위를 견딘다.
또 겨울 동안 차량을 운행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혹시 주택 내부에 중앙난방이 연결된 차고를 가지고 있지 않을 때는 겨우내 고통의 연속이다. 물론 이런 따뜻한 차고를 가질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니 시베리아에서 거의 모두가 겪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아침에는 차가 얼어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이 예사이고, 어떤 때는 한 낮에도 잠시 세워놓았다가 차가 얼어붙어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일도 종종 있다.
겨우내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은 마치 빙판에서 스케이트를, 눈 위에서 스키를 타는 대신 차를 타는 것 같은 곡예이기도 하다. 수시로 눈이 와서 미끄러지고, 한 낮의 햇살에 눈이 녹아 얼어붙은 빙판 위에서의 운전이니 말이다. 그래도 스케이트나 스키에 익숙해지면 오히려 빙판과 눈이 자연스러워지는 것처럼 차를 그렇게 몰게 되기도 하니 스릴 만점이다.
물론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해 스노우타이어에 못을 박아 겨우내 운행을 하나 빙판에서는 이 못이 썰매처럼 미끄러지기도 하니 문제다. 또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초겨울과 눈이 녹는 봄이면 타이어를 갈아 끼워야 하는 그 수고는 어떻고… 때로는 갑자기 쏟아진 눈으로 차들이 몰려 한밤을 꼬박 새워 줄을 서 이 작업을 하기도 하니… 길은 어디는 눈이고 어디는 빙판이니, 또 빙판 위에 살짝 눈이 덮여 있기도 하니 그야말로 겨울 동안 시베리아에서의 운전은 살얼음판을 걷는 행보의 연속이다.
그러면 아예 차를 타지않고 걸어다니면 어떨까? 영하 30-40도의 거리를 걸어 가서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순식간에 동태가 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종종 털모자를 쓰는 것이 익숙치가 않은 한국인이나 중국인들이 모자 없이 거리에 나섰다가 얼굴 특히 코나 귀에 동상이 걸려 며칠이 지나면 새까맣게 살갗이 변하고, 치료한 후에 하얗게 새 살이 돋는 것을 두고 우리는 ‘시베리아 세례’라고 부르기도 한다. 때로는 살갗만 얼어버리는게 아니라 머리 속 골과 귓 속까지 얼어버려 어쩔 방도가 없게 되기도 하니 위험천만이다. 여성들은 찬 기후에 바같 출입을 하다가 발이 차가워져 신장에 문제가 생기는 일은 예사이고, 빙판이나 눈길을 걷다가 미끄러져 손목이나 갈비뼈가 부러지고, 뒤로 넘어져 뇌진탕이 되기도 하니 이거야 정말…
눈에 덮인 동토의 땅 시베리아
*시베리아의 혹한을 이겨내는 지혜*
한때는 맘모스떼가 거닐었던 풍요의 땅이 이제는 버려진 땅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 선사시대 맘모스를 사냥하던 인간의 투지와 지혜는 동토의 땅에서도 삶과 문명을 건설하는 강인함으로 되살아났다. 시베리아의 개인주택이나 별장을 방문하면 늘상 대하게 되는 본채와 떨어져 있는 작은 집들을 본다. 목재로 지어진 마당 한켠의 건물이다. 작은 창과 지붕 위로 튀어 나온 연통이 특징이다. 이 집은 무얼까? 이게 바로 러시아식 사우나다. 혹시 시내의 아파트에 사는 가구라면 시외의 텃밭 한쪽에라도 사우나를 마련하는게 이들의 소망이다. 물론 겨울에도 통행할 수 있는 시 외곽의 밭은 드물지만 말이다.
5월부터 시작되는 텃밭(다차)농사와 여름휴가 시즌을 지나 9월의 학교 신학년에 맞추어 러시아 사람들은 일상의 업무로 복귀한다. 그리고 모든 학업 및 업무의 피크는 늦가을부터 년말까지와 신년휴가를 지낸 후 이어지는 동절기에 집중된다. 가장 왕성한 활동이 가장 춥고 혹독한 계절에 이루어지는 것이 희한하다. 벌써 봄이 찾아와 부활절을 지나고 나면 다차 농사와 여름 휴가에 관심의 촛점이 놓여진다.
러시아 사우나
사정이 이러하니 동절기를 활기차게 보내기 위한 제일의 처방은 추위로 움츠러든 몸에 온기를 공급해 혈액 순환을 도와주고, 몸을 풀어주어 감기 기운을 쫓아내는 사우나가 필수이다. 화력이 좋고, 불똥이 튀지 않으며, 단단해 오래 타는 시베리아 어디에서나 지천인 자작나무(베료쟈) 장작이 화목으로 제격이다. 또 초여름 연한 순이 터쳐 나와 잎이 무성해지기 시작할 때 잘라 말려두었던 가지들을 묶어 장작불 위에서 데워진 뜨거운 물에 담가두었다가 그 가지로 사우나의 온기로 달구어진 몸을 적당히 두드려주면 열기가 순식간에 몸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또 가지로 몸을 두드려 줄 때 추위로 뭉쳤던 근육이 풀려지며 맛사지 작용을 하게 되어 온 몸의 피를 활기차게 순환시켜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게 자작나무가지를 들고 서로 온 몸을 두드려주면 사우나 전체로 퍼지는 자작나무잎의 향기는 러시아 사우나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즐거움이다.
러시아 자작나무숲
보통 가정에서는 주말을 이용해 사우나의 불을 지피고 함께 사는 온 가족, 여러 세대와 친척까지 돌아가며 이용한다. 그리고 얼마나 뜨겁게 불을 지피는지 그 열기를 견딜 수 있도록 사우나에 들어갈 때는 머리에 모자를 덮어 쓰고, 장갑을 끼고, 발에는 슬리퍼까지 착용을 한 상태로 사우나를 즐긴다. 그리고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들 정도로 몸이 달구어졌을 때는 눈이 쌓여 있는 마당으로 뛰어나가 눈 위에서 뒹굴거나 아니면 얼어있는 연못이나 수조의 얼음을 깨고 그리로 뛰어 든다.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보면 시베리아의 혹한과 얼음은 이제 함께 하고 뒹굴 수 있는 친구가 된다. 이러니 오히려 추위와 눈보라가 몰아치면 북극의 백곰이 제 철을 만난 것처럼 활기차게 활동하게 된다.
또 겨울에 거리로 나서보면 작은 썰매들의 행렬이 줄을 이룬다. 물론 최근에는 자동차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이런 풍경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아직도 늘상 대하는 풍경이다. 1년의 절반이 겨울로 세상이 온통 눈에 덮여 있으니 아이들을 집 주변의 유치원에 데려다주거나 함께 외출을 할 때면 늘 썰매를 이용한다. 부모들이 썰매 앞에 줄을 매달아 끌고 가면 온 몸을 꽁꽁 묶어 무장한 아이들은 마치 왕자나 공주처럼 썰매에 기대어 앉아 느긋하게 길을 간다. 힘이 부치는 노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장을 볼 때도 썰매가 한 몫을 한다. 무엇이든지 사는대로 보따리에 담아 썰매에 올려놓으면 힘들이지 않고 옮길 수 있으니 말이다. 시베리아에서 썰매는 놀이기구가 아니라 살아가는 삶의 도구인 것이 특이하다.
무엇보다 시베리아의 추위를 이겨내는 수훈 갑은 도시중앙난방이라 하겠다. 모든 것을 중앙에서 계획하고 공급, 통제하는 공산주의의 잔재이기도 하지만 이보다 더 혹독한 추위에서의 삶을 용이하게 해주는 도구는 찾기 힘들다. 어림잡아 도시의 1개 구에 하나 정도의 화력발전소가 가동하여 여기서 필요한 전력 및 중앙난방을 위한 온수를 공급한다. 발전소에서 공급되는 온수는 도시 전체에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파이프라인을 통하여 아파트와 각 주택으로 전해지고 발전소로 되돌아 와 다시 데워지고 공급되는 순환시스템이다. 이 중앙난방시스템에만 연결되면 집 내부의 난방을 위해서 해야할 일은 전혀 없는 셈이니 시베리아의 추위로부터의 해방인 셈이다. 만약 개인이 따로 난방을 한다면 연료의 구입부터 보일러 및 난방 설비며, 이의 관리까지 또 혹한 시에 비상 상황이 생겼을 때의 일을 대비하자면 실로 엄청난 힘과 재정의 소모가 자명하다.
그러나 난방 및 온수까지 자동으로 공급되니 실로 큰 짐을 덜고 사는 셈이다. 마침 러시아, 시베리아는 석유, 석탄이 풍부하니 연료 걱정은 없다. 매달 난방과 온수비를 내기는 하지만 개인이 이를 감당할 때와 비교하면 몇 배로 싸니 이야말로 감지덕지다. 물론 난방비는 지역마다 차이가 나고, 최근 들어 많이 비싸져서 부담이 되기도 하나 시베리아에서의 삶을 꾸려가는 최선의 이기인 것은 분명하다.
이렇게 시베리아에서의 혹한을 이겨내는 인간의 대응은 함께 하는 공동체 정신에 그 근간이 있다. 광활하고 혹독한 대지에서 홀로 있는 인간을 생각해 보라! 그에게 삶에의 희망은 찾아볼 수 없으리라. 살아남기 위해 러시아 사람들은 함께 할 수 밖에 없음을 깨우쳐온 셈이다. 한사람의 일생을 보아도 이들은 어릴 적부터 주변과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고, 사회가 돌아가는 것도 이 관계를 근간으로 한다.
예를 들어 학교를 보자면 러시아에서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가 대부분 한 학교로 되어 있다.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에 만들어진 학급은 고등학교 졸업까지 한 반으로 이어진다. 이사로 말미암은 전학이나 다른 학교로의 진학 등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학급 친구는 무려 11년 동안 함께 지내는 사이가 된다. 그러니 학교 친구는 평생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는게 십상이다. 이 학교 친구는 사회 생활로 이어져 같이 사업을 하거나 심지어 정치 동료가 되어 국가를 운영하기도 한다. 또 많은 부부가 이 시절의 사랑으로 탄생한다. 우리 한국에서는 학년마다 학급이 갈리어 우정을 지속하기 힘드는 것을 생각하면 딴 세상 얘기인 셈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를 조금만 삶의 현장으로 연결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시베리아에서 자동차로 어디를 여행한다 치자. 러시아 특히 시베리아는 우리와 거리 개념이 전혀 다르다. 이들에게 있어 가까운 거리는 차로 하루, 비행기로 두시간 이내의 거리 정도다. 러시아를 동서로 기차나 자동차로 횡단하자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만10일은 족히 잡아야 하니 하루면 가까운 거리라는 것이 이해가 될만 하다. 업무 차 주변 도시들에 자동차로 출장을 다녀오자면 대략 3,000km의 거리가 보통이다. 그러니 만약 혼자 이런 여행길에 나선다면 어떨까? 또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망망대로에서 고장이라도 난다면 그야말로 대책난망이다. 물론 교대하는 이 없이 밤낮 하루를 혼자 운전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공동으로 함께 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이들의 삶이다.
이러한 공동체적인 사고방식과 삶의 자세는 시베리아인들의 삶의 일상에 배어 있다. 구체적으로 부딪치는 생활의 현장에서 이들은 일상적으로 협동조합을 조직해 힘을 모으고 문제를 해결해 간다. 예를 들자면 자기의 집이 위치한 골목의 주민협동조합, 시외 텃밭의 다차(별장) 소유주들이 함께 한 다차협동조합, 아파트 건축을 위한 주민조합,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이 인근에 차고를 집단으로 건축하고 차고주협동조합을 조직하기도 하고, 심지어 공동 지하저장고를 위해 협동조합을 조직해 이의 건축부터 관리와 운영을 도모하기도 한다. 물론 사업도 동업자들이 모여 협동조합을 조직해 물품의 생산, 판매, 관리 등을 함께 하는 것은 물론이다. 주민협동조합에서는 골목 내의 중앙난방, 상하수도, 전기, 전화, 도로, 방범 등 모든 문제를 공동으로 관리하고 해결해 나간다. 아파트, 다차나 차고, 지하저장고도 이와 동일한 내용이다. 건축부터 관리, 운영에 이르기 이들은 공동으로 힘을 합해 분담하고, 지도자를 세워 운영하고, 관리 감독해 나간다.
러시아 다차
러시아는 광활한 국토에 적은 인구와 통제사회의 긴 역사 때문에 각 지역이 단절되어 있고, 삶의 필요를 충족시켜줄 서비스나 물건들을 가까이에서 쉽게 구하기가 어려운 일이 많다. 이럴 때 서로 알음알음 자기가 가진 것과 할 줄 아는 것을 서로 공유하며 살아가는 것이 삶의 귀중한 방편이 된다. 러시아에서 서구식 개인주의가 뿌리내리기 어려운 배경이다. 물론 이들은 광활한 대지에서의 툭 터진 삶의 환경에서 자유분망한 기질이 배어있으나 동시에 살아남기 위해 함께해야만 한다는 것을 동시에 알고 있다. 이 둘이 엮어지는 모습을 보자면 때로는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러시아는 이해할 수 없고 단지 믿어야할 따름이라는 속담이 지금까지 회자되는가 보다.
물론 이렇게 서로 엮이는 공동체의 모습이 때로는 역으로 끼리끼리의 배타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폭력배에서 경찰, 심지어 정부 지도자들까지 연결되는 러시아식 마피아의 경우처럼 말이다. 개혁, 개방의 90년대의 혼란기를 거치고 나서 거의 유일하게 러시아를 묶어주는 슬라브 민족주의를 배경으로 하는 애국심으로의 호소도 그런 문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스킨헤드와 같은 유색인종 혐오의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절대적인 진리와 도덕의 기준을 무너뜨린채 자신의 실리에 따른 왜곡된 잣대로 판단하고, 이에 따라 응징하려는 미국식 합리주의의 오류를 보면 함께 살아보자는 러시아식 공동체는 오히려 인간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시베리아의 추위와 혹독한 환경은 그곳 사람들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공동체의 절실한 교훈을 가르쳐준다. 이는 이들을 이해하는 결정적인 키일 뿐 아니라 오늘날 분열되어 신음하는 세상을 향한 치유의 도구가 된다. 우리 인류는 결국은 지구의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이니 말이다.
얄팍한 지혜나 처세가 광활한 자연 앞에서는 결국 그 뿌리가 드러나고,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됨을 시베리아에서는 느낄 수 있다. 시베리아에서 중생하고, 인류를 향해 교훈을 던져준 러시아의 대문호들이 거쳤던 삶의 걸음은 우리에게 오늘 동일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인생의 영화는 순간이고, 하나님과 그 진리만이 영원하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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