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 한인선교사들이 전하는
- 세계선교보고(世界宣敎寶庫)
선교현장의 추억 3 [압하지야 우동수 선교사]
- 조회 : 1,898
- 등록 : 2021-04-21
☆선교현장의 추억 3☆
*아버지와 아들* (2015.1.10)
어느덧 다섯 아이들이 다 장성했다. 아직 막내는 만 16세로 미성년의 나이지만 다섯 자녀 중에 가장 키가 크게 되었으니 다들 자랐다고 해도 될 만 하다. 딸 셋과 아들 둘로 셋째 딸과 차남까지 있으니 요사이로는 정말 드문 일인 것 같다. 딸 셋은 이래저래 부딪치는 일이 있어도 하나님이 시초부터 만드신 여성의 부드러움과 수용성이 있어서 인지 사근사근 무던하게 모든 일이 지나가고 만다. 그러나 아들들과는 뚝뚝한 남자들 사이라 그런지 서로 걸리는 경우가 많다. 이제 대학원을 마치고 완전 자립하는 순간의 장남이나, 조금 늦게 시작한 사춘기 막바지의 차남도 그렇다.
예전에는 익숙하던 일상의 일이나 대화도 의외로 껄끄러운 소통과 서로의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심심찮게 언론에 오르내리는 막가파 가족의 사건이나, 재벌 아버지와 아들들 사이의 갈등도 익숙하다. 우리야 목사, 선교사 가정에 재산도, 돈도 없는 나그네 신세이니 그럴 일도 없지만 말이다. 아들들이 어려서부터 오랫동안 외지, 외국에서 살고 배워 한국어가 외국어가 된 영향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아들들의 모국어는 러시아어니 그렇다. 그러나 아들들은 자신의 세계와 앞길, 삶을 설계하는데 무척이나 시간을 들이고 애쓰는 모습을 보니 완전한 한 인간, 특히 남성으로 세워지는 과정이 쉽지 않음을 보게 된다.
물론 나 자신의 정체성과 신앙, 소명을 확인하고 이를 준비하고 살아온 일은 뼈를 깎는 것과 같은 인내와 연단의 시간을 거쳐 된 일임을 회상한다. 편모, 불신 가정의 막내가 아무도 생각지 않던 시절에 공산권의 종주국을 향한 선교소명을 품고 목사요, 선교사가 되어 그 일의 성취를 향해 달려왔다. 이제는 소련과 공산권을 넘어 세계로 향한 걸음을 이 나이에 다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 시작하고 있다. 아빠인 나에게 아들이 붙인 별명은 ‘비전아빠’다. 사명, 비전을 향해 앞으로만 달려오고, 제자들과 자녀들을 향한 대화의 주제도 나의 사명인으로의 삶의 여정과 항상 동일했으니 그럴만한 일이다.
요사이 청년세대의 미래가 암울하다. 남녀평등의 사회에, 군복무의 부담까지 안고, 컴퓨터와 경쟁하며, 신자유주의 자본사회의 잉여물이 되지 않으려는 이 시대 아들들의 분투가 처절하다. 몇몇의 전문직종을 제외하고는 설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그동안 호사를 누렸던 전문직도 파산이 일쑤요, 자본권력 갑질의 수하가 된 것이 일상이니 말이다. 반복되는 경제위기로 궁지에 몰린 이 시대 아버지들인 베이비붐 세대의 앞길도 캄캄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 아버지로 아들로 떳떳하게 서로에게 세워지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과제다. 궁지에 몰려 무너져 가는 가정으로 넘쳐나는 오늘이다.
사명인으로의 삶의 출발부터 나의 앞길은 철저히 안개에 가려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전혀 없었다. 있는 것은 오직 사명, 비전이었고, 이것은 오직 믿음 안에서만 확인할 수 있고 볼 수 있는 실체였다. 그 믿음은 오직 살아계셔서 말씀하시고, 응답하시며, 친히 일하시는 하나님 그분을 향한 중심과 삶이었다. 그러나 출발의 때와 동일하게 나의 신앙은 오늘도 시험 가운데 있다. 단지 그 대상이 달라졌을 뿐이다. 아들들도 자신의 하나님 앞에서의 본연의 삶을 향한 분투의 길을 가고 있다. 사명과 이를 따른 인생지도를 그리며 이를 향해 나아간다. 또 온전한 그림이 그려지기를 기도하고, 인내로 고대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아버지와 아들, 우리는 동일하게 이 사명과 삶을 향한 인생 나그네임을 실감한다. 그러나 또 바로 눈앞에서 서로 인간임을 보고, 이로 부대끼는 처지이기도 하다. 서로의 형편과 바램, 의무와 책임, 안쓰러움과 뿌듯한 자부심을 교차로 느껴가며 날마다 부딪치고 살아간다. 이제 다섯 자녀가 다섯 나라에 멀리멀리 흩어져 가족을 함께 보는 것이 특별한 일과 시간이 되었다. 그러니 오히려 더 만날 때는 간절함과 그동안 쌓였던 온갖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도 한다. 제한된 시간과 기회인 것을 실감하며, 감취어지고 쌓였던 것을 열어 제치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치며 말이다.
이제 아버지로 남겨진 일은 떠나보내는 일이다. 아들들을 첫 걸음마의 순간 같은 조바심과 설렘으로 지켜본다. 때로 그 조바심이 잔소리와 다툼이 되기도 하고, 설렘이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저 나의 삶의 길을 뚜벅뚜벅 가는 발걸음으로 이들의 이정표가 되어야 함을 그때마다 실감한다. 오늘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믿음의 시험을 이겨내는 본이 이들의 길안내가 됨을 다시 생각한다. 이 밤을 지내면 잠시 먼 길을 다녀오는 장남을 다시 본다. 오랜 비행에도 불구하고 다시 내일 저녁에는 자신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이 아들에게 있다. 또 며칠을 지내면 자신의 앞길을 찾기 위해 또 홀로 길을 떠나 마주쳐야 한다. 마치 별을 따는 일이다.
아들아!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힘껏 달려가자. 그것이 당장 눈앞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한 걸음일지라도 믿음으로 이정표를 확인하며 말이다. 나도 내게 남겨진 사명의 길을 청년의 기력으로 다시 헤쳐가야 함을 다짐한다. 주님이 나의 힘이 됨을 의뢰하고, 그 본을 끼치도록! 혹 아직 그 길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해도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갈망으로 헤쳐 나아가 길을 열고 찾아가자! 골짜기와 등성을 헤치고 타고 올라 드디어 정상에 서서 천하가 눈앞에 보일 그 날을 소망하며 오늘의 등정을 감당하자. 아들에게 주는 말이라고 우리 세 딸들이 실망하지 말기를 바란다. 너희도 동일한 아버지의 유업을 잇는 상속자들이다.
*시베리아 사역* (2015.8.5.)
금번 6개월에 가까운 시베리아 방문사역의 마무리 단계이다. 8월 31일 귀국 예정이다. 진행되었던 일은 남시베리아 2개 지역을 순회하며 현지교회의 선교동력화 모색, 현지 이양교회의 성경전권연구로 선교적 교회로의 추구, 유라시아 친선특급행사 진행으로 북방선교의 인적, 물적 인프라 구축 등이었다.
그동안 준비해왔고 마무리할 과제는 미전도종족 하카스 교회지도자 훈련, 서시베리아 2개 주요개신교단의 지도자들을 대상으로한 다민족, 다문화선교포럼 등이다. 하카스민족은 그간의 왕성한 시베리아 미전도종족선교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사역에서 제외되어 진전이 없다. 이번에도 초청훈련 계획이 있었으나 성사되지 않아 다음 주 현장을 방문코자한다. 선교포럼은 이제 세부진행 확정과 준비 마무리 단계이다.
이양된 교회의 일상적인 건물관리 외에 새로운 사역과 구조로의 전환에 대한 논의도 8월 한달간 진행하고 실행해야 한다. 가정적으로는 시베리아로 돌아와 새롭게 정착하고 사역할 자녀들을 위한 선교인프라를 준비하는 과제도 있다. 지금까지의 선교현장은 선교사와 현지인의 구조라 아예 자녀선교사들이 설 자리가 없었다. 명철, 민첩함이 요구되는 마무리 시간이다. 오랫동안 한국제품의 마무리 수준이 품질과 경쟁력의 문제가 되었음을 기억한다. 하나님나라와 선교에 합당한 질적 수준을 생각한다. 사역자와 인생은 그가 떠난 후의 열매로 평가된다는 것을 명심하며...
그리고 또한번의 한국, 한국교회로의 다민족, 다문화 선교를 향한 걸음을 옮긴다. 아직도 견고한 여리고 성벽일지라도 다시 한번 순회의 길을 간다. 교회 자체의 원형의 회복과 하나님나라와 선교로의 산 역사를 위하여! 그리하여 북방 유라시아의 선교역사가 새롭게 씌어지며, 열방과 나라들에 그 뜻 이루어지도록.
*시베리아 다문화선교포럼*
오는 8월 19~23일에, 러시아의 지리적 중앙지점으로 시베리아 최대도시인 노보시비르스크와 구소련 최대의 쿠즈바스 공단의 중심도시인 노보쿠즈네츠크에서, "다민족, 다문화사역과 선교적 교회"를 주제로, 베를린에서 38년간 무슬림들을 대상으로 다민족사역 중인 영국 출신 목사 데이빗 샌더스 OM선교사를 초청하여, 서시베리아 교회지도자들과 선교사들과 함께 포럼을 진행코자 합니다.
이를 계기로 교회가 어떻게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감당할 것인지 논하고 실천하는 운동인 세계기독교포럼의 첫 걸음을 옮기고자 합니다. 여러해 전부터 구상되고 논의되어온 여정의 출발인 셈입니다. 교회가 기독교세계관과 신학의 책상담화와 실용과 물질주의의 세속주의 가치관에 물든 목회와 선교사역 현장을 넘어, 다시 땅 위에 두발을 딛고 하나님나라의 성취를 향한 걸음을 내딛고자 합니다. 이 시대 세상의 현실을 놓고 고민하며, 교회의 어그러짐과 무기력함을 애타하는 주 안의 동역자들과 친구들인 세계 열방에 흩어져 계신 여러분과 함께 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대책은 자신의 백성, 교회입니다. 그 일군된 주의 사람들이 함께 하길 원합니다. 이제 그 구상의 시작입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함께 제안과 준비, 진행에 동참해주시길 요청드립니다. 사도시대 교회와 선교의 진로를 논하고 정했던 예루살렘공회와 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세상의 포럼과 회의들을 떠올립니다. 다시 교회가 문명과 역사를 이끌어 가도록 함께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제안과 발제, 동참에 대해서 자유롭게 나눠주시기를 바랍니다. 포럼의 시작과 진행까지 성령님의 인도를 의지코자 합니다. 그분의 지혜와 능력의 충만하심을 의지하고, 진행을 맡겨드리고자 합니다.
한국에서는 매주 월요일 직항비행기편이 인천-노보시비르스크로 저렴하게 연결됩니다. 일부 유럽의 도시와 이스탄불, 북경, 방콕 등도 직항이 연결됩니다. 이외 지역에서는 모스크바를 경유하는 노선이 하루에도 수 편이 운항합니다. 비행기편 외에 시베리아 체제는 현지교회에서 섬기고자 합니다. 포럼의 언어는 한국어, 영어, 노어 다중통역을 기본으로 진행할 것입니다.
*시베리아 다문화선교포럼의 결산과 성과* (2015.8.28.)
지난 3월 시베리아에 들어오며 제안하고, 준비하여 두 도시, 노보시비르스크와 노보쿠즈네츠크에서 진행했던 선교포럼이 지난 23일 주일에 마무리되었습니다. 19일에 이번 포럼 주제발표자로 동참한 David Sanders 영국선교사님이 베를린에서 도착해, 20일에는 노보시비르스크에서 21-23일은 노보쿠즈네츠크에서 포럼을 진행했습니다. 시베리아의 두 대표적인 개신교단인 침례교회와 오순절교단의 감독 분들이 솔선해 참여하고, 포럼의 조직과 진행을 위해 섬겨주셨습니다.
노보시비르스크에서는 많지 않은 수였지만 두 교단의 핵심인사가 동참해 선교협력과 교류에 있어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노보쿠즈네츠크는 포럼만이 아니라 주말과 주일의 교회집회와 교회들의 주요사역인 재활센터까지 연결해 선교적인 운동의 계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주일 마지막 집회 시에 서시베리아 오순절교단 감독이신 안드레이 하로셴코 목사님이 청년 선교헌신자들을 위한 기도에 이어 이들을 선교사로 불러 초청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부름에 10명 정도의 청년들이 응답해 강단으로 나와 저와 David 선교사님이 축복의 기도하였습니다. 더 극적인 장면은 바로 그 후에 이어졌습니다. 안드레이 목사님이 바로 그 자리에서 선교훈련학교를 제안하고, David 선교사님께서 교수로 동참해 주실 것을 부탁한 장면입니다. 목사님께서 직접 설립하고, 사역하는 교회만 8개에 달하고 본 교회에는 다른 회중들의 3번의 예배가 주일에 진행됩니다. 지교회들도 복수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는 중입니다. 목사님의 말씀은 매 집회 시 선교헌신 초청을 한다면 그만한 수의 청년들이 나올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림잡아 안드레이 목사님께서 사역하시는 회중 가운데 선교사로 헌신해 준비할 청년들이 거의 100명에 달한다는 계산이 됩니다. 침례교단 가운데도 적지 않은 수의 선교헌신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아직 시베리아에 조직되어 상설로 사역하는 선교훈련원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개교회 별로 또는 특별한 강사의 방문 시 일시적으로 선교세미나가 진행되기는 했으나 체계적인 내용과 이를 진행할 상설 조직이나 장소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포럼의 준비와 진행 중 뜻하지 않게 이루어진 한 가지 일은 제 자녀들을 포함해 시베리아 선교에 소명을 가진 MK들과 이미 헌신되어지고 준비되어 선교현장으로 나서는 시베리아 현지청년들을 위한 Siberia Youth Mission을 조직하게 된 것입니다. MK들은 선교의 특별한 자원으로 다중언어와 다문화, 신앙훈련으로 준비되어 있지만 그 소속이 한국교회나 현지교회가 아니라 아직까지 이들을 받아 함께 사역할 Mission Board가 없었습니다. 현지청년들은 아직 교회가 이들을 훈련하고 뒷받침할 준비가 되지 않아 독립군의 모습으로 선교지로 나서는 형편이었습니다.
SYM을 조직하며 선교회를 이끌어갈 간사로 MK 중에서는 차녀 한나, 현지청년 가운데는 투바민족의 자매로 몽골에서 영어로 대학교육 받고, 이스라엘에서 단기선교를 한 아야나 자매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우선 선교 헌신된 MK들과 현지청년들을 모으고, 동시에 이들을 이끌고 뒷받침할 현지교회 지도자들, 또 이들을 가르치고 훈련할 분들, 또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지원할 분들이 함께하는 모임입니다. 우선 Facebook 그룹으로 ‘Siberia Youth Mission’을 개설해 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지난 포럼을 토대로 시작되고 진행할 일은 이렇습니다. ‘시베리아다문화선교훈련원(Siberia Multi-cultural Mission Training Institute)’의 설립과 운영입니다. 우선은 단기과정으로 시작하게 될 겁니다. 강사로는 David 선교사님과 연결된 한국과 미국의 선교학과 신학 교수님들께서 섬겨주시기를 요청 드립니다. 현지 각 교단의 대표 분들과 선교 지향적 현지교회의 목사님들, 선교사님들께서는 운영의 실제부분에 동참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영어, 노어, 한국어 등의 강의 다중통역과 행정 등의 실무는 대학영어교수로 일하는 차녀 한나가 우선 감당할 준비가 되었구요. 아야나 자매는 9월부터 몽골국제학교의 교사로 선교현장에 나아갑니다. 그러나 선교회를 위해서는 함께 동역할 겁니다. 때가 되면 같이 일하게 되겠지요. 마침 장소는 제가 건축하고 사역했던 시베리아선교센터를 이용할 수 있어 어려움이 없습니다. 사무실, 강의실, 도서실, 휴게실, 식당, 숙소 등이 완비되어 있습니다.
암튼 이번 포럼의 성과를 요약하자면 ‘Siberia Youth Mission’의 태동과 ‘Siberia Multi-cultural Mission Training Institute’의 설립 구상입니다. SYM, SMMTI 두 선교기관이 포럼의 열매로 탄생하는 쌍둥이인 셈입니다. 이제 이 두 기관이 시베리아의 교회와 청년들을 일으켜 세워, 시베리아에서 모든 민족들을 감당하는 선교역사를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또 이를 시작으로 안디옥교회가 로마제국 전부를 감당한 것처럼 유라시아 대륙과 세계로 나아가 열방을 선교하는 역사를 이루게 될 것을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양승훈 교수님, 환영합니다!* (2015.1.14)
본 포럼의 출발 시초에 유일하게 함께 해 제안을 주셨던 캐나다 밴쿠버에 소재한 기독교세계관대학원 원장이신 양승훈 교수님께서 본 세계기독교포럼 페이스북 그룹을 찾아 회원으로 동참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09~2010년 안식년 기간 중 밴쿠버 동계올림픽 기간에 기독교세계관 연구와 올림픽 선교사역을 위해 잠시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2010년 봄에 인근 미국의 시애틀에서 가까이 몇몇 분들의 기독교지도자들을 대하며 본 포럼의 구상을 실천하는 첫 시도를 했습니다.
예정했던 첫 모임에 양 교수님께서 제안서(파일로 본 그룹에 게재됨)를 준비하시고, 국경을 넘어 먼 길을 서둘러 달려 오셨지만 웬일인지 그날따라 국경 통과가 지연되고 길도 어긋나고 연락도 되지 않아 모임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후 저는 급히 선교지로 돌아와야 했고, 교수님께서는 다시 포럼 구성을 위해 시애틀로 걸음을 하셨지만 저의 준비부족과 불참으로 일이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본 포럼의 태동을 위해 가장 큰 헌신과 동참을 해주신 분은 양 교수님이십니다.
이제 거의 5년이 지나 SNS 그룹의 형태로나마 교수님과 함께 하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바쁘신 중에라도 살펴주시고 지도해 주시길 요청 드립니다. 우선 양 교수님을 본 그룹의 관리자로 위촉 드려 봅니다. 모두 환영해 주시고, 제안과 동참, 실천으로 함께 나가길 소망합니다.
*어둠에 빛!* (2015.5.1)
1980년대의 어둠 가운데 빛의 행진을 떠올려본다. 냉전의 막바지, 이어진 군부통치의 어둠에서 공산권의 모국 소련을 향한 선교의 부르심으로 모여든 작은 무리가 있었다. “작은 무리여 두려워 말라!”는 구호는 무신론 제국 소련에서 핍박받는 지하교회를 향한 응원의 함성과 동시에 러시아선교회란 이름으로 모인 우리를 향한 격려의 음성이었다. 소명은 있었지만 소망은 보이지 않는 시절의 카타콤에서의 초대교회 교인들의 모임과 같았다. 공산권을 향한 복음방송의 기치를 내걸었던 극동방송 지하공간에서 우리의 모임은 한동안 이어졌다.
한국외대 노어과 학부생들의 자발적인 성경공부 모임에 김영국 장로님이 연결되고, 몇몇 목사님들이 동참하여 선교회의 틀이 만들어졌다. 1980년 부활절에 소련선교의 소명을 받고, 홀로 고심하던 필자에게 이 소식이 전해진 것은 선교회가 조직된 이듬해인 1985년 초의 일이었다. 대학을 마치고, 미국신학교를 몇 학기 공부한 후 군복무를 하던 인생 훈련의 한 가운데를 지나던 시절이었다. 미국유학과 선교준비를 염두에 두고 결혼까지 한 상태에서 소련선교를 연관한 출국의 정보가 기관의 눈에 걸려 바로 징집대상이 되었다.
군복 윗도리 주머니에 넣어 틈날 때 마다 읽어보던 기드온선교회 발행의 작은 신약과 일과 후 청취할 수 있었던 극동방송의 복음메시지가 큰 위안이 되던 시절이었다. 마침 러시아선교회 주일 오후 모임의 안내가 흘러 나왔다. 함께 할 이 없고, 갈 길을 모르던 시절에 비춰진 한줄기 빛이었다. 그러나 선교회 모임에는 그해 11월 제대 후 시간을 낼 수 있었던 년 말 무렵에 참석할 수 있었다. 아마 노어과, 외대 출신이 아닌 유일한 선교지망생이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총신대원을 졸업하고, 바로 외대 노어과에 학사편입하고 선교지로 가는 걸음이었다.
어둡고 외로운 소명을 따르는 길에서 함께 할 동무가 있다는 위안이 컸다. 의외로 한국에서의 신학교 시절 신학과 교회의 열풍에 선교의 소명이 희미해지던 순간에 선교회를 통한 학비 후원과 김 장로님의 관심은 소명을 향해 정진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었다. 무엇보다 당시 한국에서 소련으로 갈 길을 찾을 수 없던 상황에 이정표를 찾게 된 것이 감사했다. 그 계기는 이러했다. 김 장로님께서 준비한 소련선교자료 슬라이드가 있었다. 그 중 한 컷이 당시 세계선교 상황을 담은 지도였다. 그 지도가 바로 선교를 향한 인생길의 이정표가 되었다.
그 지도상에 기독교선교 자유지역은 흰색, 금지구역은 검은 색, 중간지대는 회색이었다. 당시 서유럽을 제외한 거의 전 유라시아는 검은 대륙이었다. 한때 검은 아프리카였던 시절이 있었는데, 1980년대는 기독교선교역사에서 그야말로 검은 유라시아의 시절이었다. 그 전체 유라시아에서 대륙의 끄트머리에 붙은 한반도의 절반 한국이 기독교회가 부흥해 선교의 열망을 품은 유일의 지점이었다. 마치 전체 유라시아를 총의 형상으로 봤을 때 그 방아쇠에 해당되는 위치였다. 그 순간에 반드시 공산권 유라시아를 향해 한국교회를 사용하시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신학, 선교훈련과정을 진행하고, 마무리 순간 정확하게 소련이 개방되어 소련선교의 현장에 서게 되었다. 그 과정 가운데 서울올림픽이 개최되었고, 우리의 소망이 눈앞의 현실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80년 소련 소명의 순간에는 생각할 수 없던 일들이 바로 그 부름의 현장인 서울에서 88년에는 동서가 화합하는 세기의 사건으로 성취되었다. 소련의 개방이 올림픽으로 절정에 이르게 되었고, 냉전으로 일컬어졌던 세계사의 흐름이 한순간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그 현장에 우리를 두셨고, 준비케 하셨고,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말씀하시고, 신실하시다. 그 확실한 증거를 바로 우리 삶의 현장 한 가운데에서 보이신다. 88년 7월 당시 세계 최강인 소련 올림픽 체조 팀의 서울 전지훈련과 시범경기에 첫 소련인의 공식 내한이 이루어졌다. 선교회의 합심기도 후 인쇄된 노어신약성경꾸러미와 선물을 동봉한 선물봉투 10개를 전할 일에 자원자로 나섰다. 소련 사람들을 직접 대면해 선교하는 첫 시도였다. 올림픽 체조경기장에 모여든 수많은 인파와 언론, 삼엄한 겹겹의 경찰 보안병력 가운데 도우미 어린이들을 통해 멋지게 성경과 선물이 전해졌다.
올림픽을 전후해 선수단 및 예술단원들과 인천, 부산, 울산 등 국내항구에 입항한 선원들을 향한 선교가 이어졌다. 이 일은 국내 방문 및 유학, 취업 등 이민 러시아어 사용자들을 위한 선교와 교회개척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온다. 89년 무렵에는 선교회의 장소를 따로 마련해 장로님을 도와 첫 간사로 사역했던 기억도 있다. 올림픽 이후 10만권씩의 노어신약성경의 출판이 이어졌고, 이는 대한성서공회 차원의 성경전권의 인쇄, 출판과 러시아성서공회와 러시아 현지 개신교단을 통한 전국적인 성경보급으로 이어졌다.
90년 순식간에 이루어진 소련개방과 직접선교의 개막은 놀라운 기회와 동시에 시험대였다. 아직 공식 수교와 선교의 자유가 주어지기 이전인 90년 3, 4월 당시 러시아선교회 회장 이종열 목사님과 총무 김 장로님의 첫 소련방문이 진행되었다. 모스크바로부터 시작해 중앙아시아와 사할린에 이르기까지 재소 고려인동포 사회를 중심으로 선교와 교회개척의 첫 삽을 뜨는 걸음이었다. 처음으로 대면하여 복음을 소련현지에서 전하고 접하는 순간이었다. 한인신자들을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던 대륙에 비해 사할린에서는 한인지하교회가 오랜 시절 이어져왔다.
두 분 일행의 방문이 있었던 90년 4월 초 무렵에는 이미 진행되었던 사할린의 자생교회에 20명에 가까운 성도가 회집하여 폭발적인 성장의 계기가 이루어졌다. 적십자사 초청의 사할린동포 1세 노인들의 제 1차 한국방문이 성사된 것도 이 무렵 이었다. 이분들을 선교회에서 영접하기도 하고, 가족과 친척들과의 상봉 시 접한 신앙과 교회의 인상이 사할린에 돌아가서 신앙생활과 교회출석의 계기가 되었다. 필자에게는 이 일행 중 이미 사할린에서 신앙을 가지셨던 가정의 선교에의 간청이 구체적인 선교지로 사할린을 향한 부름이 되기도 했다.
80년의 소련선교에의 소명 이후 11년에 걸친 준비의 기간이 있었다. 그 기간 동안 주님께서는 평생 선교를 위한 선교의 강령들을 주셨다. 요약하자면 첫째, 소련 동쪽 끝에서 서쪽 끝에 이르기까지 복음 전파, 둘째, 말씀의 진리 위에 교회들을 개척하고 조직해 교회를 중심으로 선교, 셋째, 교회와 사회를 감당할 지도자들을 세워 세상을 섬기기였다. 지금까지 소련의 동쪽 사할린으로 시작해 대륙의 중심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 서쪽 끝 카프카스의 소치와 압하지야를 중심으로 복음전파와 교회를 개척해 교단으로 조직하는 일을 진행했다.
이제는 선교 후반기의 제자와 지도자들을 세워 세상을 감당하는 단계이다. 선교모교회인 한국과 미주, 유럽의 서구교회들을 비롯해 선교지인 러시아, 구소련과 구공산권의 북방교회들이 선교전진기지로 다민족, 다문화, 다언어의 현장이 되도록 세계 순회 선교사역의 행로 가운데 있다. 교회가 모든 민족들로 땅 끝까지 진정 주님의 뜻과 그 나라를 이루는 주님의 몸이 되도록 그 걸음을 오늘도 옮기는 나그네의 삶이다. 지금 와서 김영국 장로님을 처음 뵈었던 1985년부터 소련에 첫발을 딛었던 1991년까지의 시간들을 되돌아본다. 그 소망 없던 시절 어둠에 빛이 되신 장로님의 소련선교를 향한 헌신과 삶에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은 더욱 찬란하다!* (2015.1.21.)
우울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세상은 우울하다. 세상의 중심으로 나와 현실을 마주 대하노라 선언하고 부딪친 발가벗은 세상의 현실은 어둡다. 고국 한국의 오늘은 암울, 그 자체다. 선망의 대상인 유럽의 중심 독일, 그중 형편이 나은 베를린에서 보는 주변도 그렇다. 파리 ‘샤를리 에브도’ 테러의 망령이 유럽을 뒤덮고 있다. 아니 마치 해일처럼 인근 아프리카로, 카프카즈로, 중동으로, 서남아시아로, 세계로 그 격랑을 몰아가고 있다. 거기에 한국 18세 청년 김 군의 가장 잔혹한 중동의 테러조직 이슬람국가 IS로의 투신은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임을 고하고 있다.
서구제국주의의 최후의 안간힘, 문명의 충돌, 세계의 다자화, 다문화로의 전이의 혁명적 변화와 격돌, 갈등, 새로운 세계적 핵전쟁의 암운이 삽시간에 온 지구를 뒤덮고 있다. 제국의 지배 세력의 경제적, 정치적 착취와 차별과 소외의 심화, 반복되는 경제 위기 속의 대공황 시대를 이미 넘긴 부익부빈익빈의 실상이 이제는 터질 수밖에 없는 지상의 현실임을 공개적으로, 객관적으로 대변해 준다. 이제 제대로 터질 일만 남은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아마 이를 재촉하는 것이 서구 권력의 유일의 관심사로 보인다. 그들로서도 아마 더 이상의 탈출구를 찾을 수는 없는 모양새니 말이다.
이제 더 이상의 현혹과 싸 발림은 통하지 않을 지경에 왔고, 세상은 이제 유리 상자처럼 서로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다. 미국과 서구의 위선도, 그 유명하던 스위스은행의 비밀계좌도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핵으로 무장하지 않은 어떤 정권도 스스로 존립할 방도는 없다. 이제는 막장이다. 그러면 그 다음 장면은 무엇일까? 철저한 제국 와해의 소용돌이와 잿더미... 그 다음은 전쟁과 파괴 후의 재건, 산불이 지나간 후에 다시 돋아나는 새싹들이겠지. 그러나 다음 세상은 새로운 체계와 문화, 등장인물들로 채워질 것은 확실하다. 그것이 오늘 다자화의 주인공들이 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오늘 세계의 관심사로 경제의 중심인 IT 산업의 화두는 플랫폼이다. 누가 그 분야의 기반을 차지하느냐에 승패가 달려있고, 승자독식이 원리로 굳어져 있다. PC 환경에서는 운영체계로의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가, 모바일 환경에서는 구글과 애플의 OS가 경쟁하고 있다. 승패는 그 기반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이미 결정되어 있다. 오늘의 격변과 투쟁의 핵심과 알맹이는 와해되는 세계 권력의 차세대의 기반은 무엇이며, 누가 이것을 차지할 것인가가 분명하다. 다자화, 다문화로의 전이 외에는 갈 곳 없는 세상에서 누가 이 기반을 차지하느냐가 바로 그 화두다.
유럽으로 몰아닥친 이주민, 난민의 물결로 이를 배척하는 극우파 정당들의 약진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이미 밀려들어온 물결을 막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구한말 조선의 쇄국과 중국의 서구세력 배척이 힘을 쓸 수 없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문제는 이들과 어떻게 한 배를 타고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갈 것인가에 해결의 열쇠가 있다. 이것이 미래 세계와 사회의 환경이며, 여기에서 통용될 플랫폼을 누가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에 장래가 달려 있다. 또 그 기반의 주체가 격변을 지나 다가올 세상의 주도 세력이 될 것도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국가와 민족, 일개 문명을 기반으로 한 기독교제국의 멸망도 기존체제의 와해와 함께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이를 돌이킬 방도는 없다. 그러면 이제 더 이상의 소망은 교회에 없는 것일까?! 언제나 그렇듯이 참 소망은 절대자이신 하나님 자신에게서 나온다. 그분의 말씀, 진리가 우리의 영원한 소망의 기반이다. 다가올 세상의 기반도 그 진리 외에는 없다. 그러면 하나님이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세상, 환경의 실체는 무엇이며 그 가운데서 살아갈 바른 기반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세상을 움직여 왔던 기반인 기독교 서구문명도 일면 성경적 가치와 가르침을 반영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전제가 기반을 갉아먹고 더 이상은 세상을 지탱할 수 없는 상황에 와 있다. 바로 교회가 세상권력이 된 중세 카톨릭제국의 와해를 뒤이은 근대 민족국가의 이념이 종교개혁 이후 세계를 이끌어온 원동력과 기반이다. 현재 기독교제국의 전제와 원리, 목표가 바로 민족과 국가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이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오늘의 실상이다. 현재 세계를 지배하는 실세인 미국이 이미 인종, 민족의 혼합 가운데 그 대표 격인 대통령까지 인종 혼합의 산물인 모습이다. 그러나 배경인 기독교 문명은 아직도 민족국가의 이념에 머물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 진리가 우리에게 계시해주는 영원한 나라, 하나님의 왕국의 환경과 기반은 무엇인가를 살필 필요가 있다. 도대체 지금의 교회와 국가는 무엇이 어긋난 것일까를 파악하고, 성경이 우리에게 제시해 주는 기반을 파악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교회의 역사에의 등장 후 인류에게 선명하게 제시된 기반은 중세의 ‘교회’와, 근대로부터 지금까지의 ‘민족(민중)’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이는 ‘이방’과 ‘군주’의 반대개념으로 진리를 반영하는 역할을 했다. 오늘의 세계, 우리의 환경은 이제 성경적 표현으로는 ‘열방’, 일반적으로는 다민족, 다문화, 다자화, 다원화다.
이 세계사의 흐름은 이미 해일처럼 우리에게 다가와 온 세상을 뒤엎고, 이에 대해 준비하지 못하고 부지불식간 이를 맞닥뜨린 세계의 주도세력은 허둥대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의 세상과 문명의 역사의 주인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의 나라의 완성을 향해 역사를 진행하고 계시다. 이스라엘도, 제국들도, 제도로서의 교회도, 근대 민족국가를 중심으로 한 서구기독교문명도 그 역사의 도구였다. 그러나 오늘은 그 나라의 완성을 향해 새로운 걸음을 옮기는 변혁의 시점이다. 열방을 두시고, 이제 이들로 한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시는 주님의 그 오랜 소원이 새로운 세계 환경을 따라 이루어질 때다.
이제 오는 새로운 세상의 기반은 모든 민족, 문화, 언어가 하나 된 교회다. 다민족, 다문화, 다언어 공동체로의 사회 환경을 이끌어갈 기반은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바로 그 교회다. 이곳 베를린에서 새로운 세상의 플랫폼이 될 사회와 교회의 모델을 보게 됨이 감사하다. 오랫동안 선교지 현장에서 외치고, 찾고, 이루고자 했던, 그리고 진행했던 바로 그 모습을 오늘 세상의 한 복판이 된 유럽의 중심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대한다. 이제 이들과 함께 함으로 선명하게 드러날 새 세상의 기반을 그려 본다.
주님께서 바벨론에서의 인류의 흩어짐 이후에 아브라함을 통해 모든 민족을 향한 구원의 복을 약속하시고, 구약에서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를 통해 보여주시고 진행하신 그 역사가 오늘에 이어지는 것을 본다. 바로 이 교회가 계시록을 통해 보여주신 영원한 나라에서의 하나님의 백성의 예표다. 다가올 격변 후의 새 세상의 기반이 될 교회다. 그 교회는 바로 다민족, 다문화, 다언어교회다. 여기에 새롭게 닥칠 세상이 움직여 갈 기반이 있다. 오는 세상은 바로 그 기반 위에서 새롭게 세워질 것임을 바라본다. 바로 그 교회가 오늘의 어둠을 뚫고, 영원한 나라의 빛을 비출 진리의 등불임을 선포한다.
*자녀들의 시베리아 귀환* (2015.7.26.)
몽골, 미국, 한국에서 선교하며 공부하고 일하며 지냈던 자녀들이 돌아왔습니다. 막내 아들은 다시 압하지야로 가서 한달을 지내는 일정입니다. 큰딸은 잠시 휴가를 얻어 큰아들이 있는 베를린으로 가고요. 다섯 나라에 흩어져있던 다섯 아이들이 이래저래 모이고 있네요. 시베리아를 떠난지 6년만의 일입니다.
첫 선교지 사할린에서 보았던 연어떼의 귀환을 떠올립니다. 6년의 시간을 먼 나라들에서 떨어져 지내다가 고향과 같은 시베리아로 다시 돌아오는 회귀의 시간입니다. 연어는 산란과 새로운 세대의 출현과 번성을 위해 무릅쓰고 폭포까지 뛰어오르지요.
다시 시베리아로 돌아오기까지 자녀들이 겪었던 훈련과 고난이 어떠했는지 떠올려봅니다. 아직도 준비하며 가야할 길이지만 모쪼록 새 세상을 열어가는 앞날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지상의 모든 교회가 다민족교회가 되리라는 비전을 공표합니다.* (2015.1.30.)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분의 유일한 몸이며, 모든 족속은 이 몸에 함께 할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 교회는 오늘 살아있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국가, 민족, 문화, 언어, 계층, 체제, 이념, 시간 등의 조건이나 추상적인 개념으로 분리될 수 없는 생명체로의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21세기 다원화, 다문화의 시대에 더 이상 국가, 민족의 분리를 기반으로 세워진 기성교회는 지속되지 못할 것입니다. 성경이 그 시초부터 보여주고, 성령께서 친히 이루어 가시는 모든 민족이 하나 되는 공동체가 오늘 우리 세대의 교회로서 드러날 것입니다. 이제 선교의 화두는 미전도종족을 넘어, 삶의 현장에서 모든 종족이 하나 되는 다민족교회입니다.
이전
|
2021-04-20
|
|
---|---|---|
다음
|
2021-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