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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과 승천의 교훈 [압하지야 우동수 선교사]
- 조회 : 798
- 등록 : 2021-06-10
*성육신과 승천의 교훈* (2021.6.10)
선교지에 몸담고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지며 특히 팬데믹으로 머무는 이 땅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현지화로 새롭게 해야하는 필요를 봅니다. 생명이 위태롭고, 생활과 활동의 틀이 흔들려 그 바닥이 드러날 때 자신의 삶의 터전이 어디에 속한 것인지가 명확해집니다.
우리에게는 이에 대한 존재의 의미를 담는 두가지 질문과 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첫째는, 이 지상에 머물 동안 삶의 토대가 되는 근거지가 어디인가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는 구체적인 사명의 내용과 이를 따른 삶의 결말일 겁니다. 물론 세계화된 오늘의 시대는 단순한 장소적인 개념보다는 누구와의 관계가 핵심적인 의미를 갖는지의 네트워크가 그 중심이 됩니다.
또하나는 이 지상에서의 사명을 따른 삶의 결산에 있어 그 기준점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각자에게 주어진 한 평생을 살더라도 그 삶에 대한 평가의 잣대는 각각입니다. 누구에게는 행복과 평안, 다른 이에게는 존경과 인정, 또는 부요와 안락함 등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 성취와 실패를 가늠하기도 하겠지요.
오늘 팬데믹으로 원치 않게 러시아와 유라시아의 중심쯤 되는 서남부 시베리아에 머물며 이곳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세우고 확인하는 시간에 드는 생각은 이 둘의 대답으로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승천의 사건과 그 교훈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 시공간의 제약을 따른 사람으로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를 정해 임하셨고 사셨습니다. 그분의 성육신은 주어진 그리스도로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예비된 때와 머물러 살아가고 돌아가실 여건과 주위의 사람들과 이를 실현할 정해진 곳이 분명했습니다.
우리의 지상에서의 삶의 나날이 때로는 스스로 의식하지도 못하고, 심지어 자의적으로 되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머물러야 할 때와 장소를 따라 빚어지는 사명의 걸음이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특별히 이해하고 용납하기 어려운 현장에 머물고 이를 의도적으로 수용해 갈 때 주님의 완전하신 하나님으로 죄에 갖혀 한계 지워진 사람으로 낮아지시고, 순종하신 성육신의 깊은 교훈을 새기게 됩니다.
언어와 문화 등 모든 것이 달라 서로 이해와 소통 조차 되지않아 절대적인 타자로 머물 수 밖에 없는 그곳에서 이를 수용해 내부인, 현지인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그 걸음의 의미를 주님의 성육신 가운데 다시한번 새깁니다. 의혹을 신뢰로, 오해를 이해로 바꾸는 지난한 과정을 품고 실행하는 걸음들을 옮겨갑니다.
그리고 그 보상은 이 지상에서 기대할 수 없는 댓가 없음을 각오하고 걷는 걸음이 성육신의 결말입니다. 또 그 과정이 십자가를 지는 삶이요, 결국은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이 성육신의 사명과 그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길을 죽음에 이르기까지 담담하게 걸어갈 뿐입니다. 때로는 주님처럼 피땀을 흘리는 고뇌의 밤이 닥칠지라도 말입니다.
그리고나서 눈을 뜨고 바라는 것이 영원한 그나라 주님의 품입니다. 바로 주님의 부활과 승천, 우리에게는 그나라의 영화로운 영원한 미래에 대한 소망입니다. 우리에게 더 바랄 것은 없습니다. 완전한 아름다움의 주님께로 향한 십자가의 걸음 후에 영원한 그분의 품안에 안기는 삶이니 더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날마다 부딪치고 인내하는 선교현장의 일들을 겪고 지내며 깨닫는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교훈입니다. 그래서 한 발자국 씩이라도 주님의 온전하심과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과 시간들이 모두 그분의 선물일진대 애탐과 한숨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걸음으로 그분의 형상대로 빚어지는 오늘이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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