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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냉전 탈세계화 시대 비서구권 선교 관점과 전략 [압하지야 우동수 선교사]
- 조회 : 972
- 등록 : 2022-04-29
신냉전 탈세계화 시대 비서구권 선교 관점과 전략 - 인본과 인문주의 틀에서 물질, 기술문명의 맥락이 아닌 신학, 교회, 선교의 성경적 세계관의 기초와 그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지상명령의 실천에 대해 (2022.4.29)
지난주 KWMF LA 서밋에서 논의된 내용의 피드백과 관련 논의입니다. 올해 시애틀, 워싱턴에서 이어질 한국 선교계의 집회 장소가 미국에 집중되는 상황입니다. 지난 서밋을 통해 우리의 현 위치를 살피고 또 시대를 조망해 앞으로의 길을 모색했으면 합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나누어진 세상에서 한국은 러시아 제재에 동참한 48개 서방국의 대열에 동참해 러시아로부터 비우호국 곧 적대국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중국, 이란, 북한 등 미국의 적대국이었던 나라들 외에 인도, 사우디, UAE 심지어 이스라엘까지 이 대열에서 이탈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와 남미의 여러 나라들도 이에 동조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서방 편에 선 상황에 우리의 선교 터전인 나라들은 그 반대로 갈리는 형편입니다. 이에 대해 취할 자세와 나갈 방향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오늘 주제를 중심으로 LA 서밋의 평가와 대안을 제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포스트코로나의 첫 출발의 계기가 된 모임이었던 것 같습니다. 먼저 유익했던 점을 나누고, 보완할 것과 앞으로의 방향을 살폈으면 합니다.
긍정 평가
제가 느꼈던 것 중 우선 긍정적인 점은 몇 분 목회자분들께서 말씀하신 선교사들이 (한국) 교회를 살린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어쨌든 선교의 영적 전선에서 부딪히는 삶의 몸부림이 틀에 제한된 교회와 목회에 도전과 시사점을 주고, 심심찮게 얘기 되던 갑을관계니 하던 형편이 교정되는 일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제는 기존의 교회와 목회의 틀을 넘으려는 생각과 시도들이 일어나는 모습이 감사합니다.또 하나는 선교계 내부에서 언급되는 융합과 현장의 실천에 대한 진일보입니다. 교회의 한계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으로도 보여지나 한 세대 이상 한국선교가 이어지며 축적된 저력의 폭과 깊이, 창의성과 야성의 발로로 여겨집니다.
아무튼 코로나 팬데믹으로 서구문화와 선교, 기성교회의 신학과 목회의 한계가 드러나고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는 중에 그나마 역동성이 살아있고, 유연하게 대처할 여력이 있는 한국교회와 선교계에 주어지는 기회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이 시점에 시니어 선교사들의 성숙한 사고와 섬김, 안내와 지원이 절실하다는 생각입니다. 바야흐로 우리가 새 시대 세계선교의 마중물과 머슴의 역할을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고 전환과 보완의 과제
또 오늘 팬데믹 후 이어지는 신냉전과 탈세계화의 상황에 사고와 방향 전환의 필요에 대해 생각해봅니다.탈냉전과 세계화의 상황에 이를 가속화시켰던 인터넷과 핸드폰으로 상징되는 기술혁명이 4차 산업혁명으로 전이되어 미래 흐름의 주류로 등장합니다. 또 이를 포스트(위드)코로나 시대를 대비하는 선교의 방편으로 삼으려는 시도들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냉철하게 오늘의 시대 전환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 과학과 기술문명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 팬데믹이고, 이제 더 이상 서구 일변도의 세계화에 제동이 걸린 것이 신냉전의 탈세계화입니다.
한마디로 서구 과학 기술문명 흐름의 진전인 4차 산업혁명은 더 이상 세계를 주도하는 정신사적 의미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명명하고 주도한 다보스포럼은 서구의 세계 패권과 신자유주의 세계화 흐름의 보루였으나 이제 더 이상 이는 유효하지 않은 전환과 격변의 시절이 도래했습니다. 바로 세계의 지정학적인 분리와 신냉전의 시작입니다.
과학기술 혁명의 전개는 팬데믹으로 그 근원적 오류와 한계를 드러냈고, 신냉전으로 이를 추동하던 세계화의 흐름이 파괴되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에 편승해 선교의 전략을 마련하고 이를 플랫폼으로 실행하는 것은 분리된 서구의 틀에 갇혀질 선교의 미래를 예비함과 다름없습니다.
분명 선교는 자신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모든 민족에게 나가 그들의 복의 근원으로의 새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급속도로 탈세계화와 지정학적 세력권의 분리로 달음질하는 세계사의 흐름에 서구 편향적인 흐름에 편승하는 것은 선교 모라토리움의 선택인 셈입니다.
물론 기술적인 물질문명의 흐름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신냉전의 상황에 이를 기반으로 하는 플랫폼과 선교의 전개는 숙고와 보완이 필요해 보입니다. 일례로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은 서방의 인터넷 검색과 SNS로부터 단절하여 자신들의 체계를 구축하고, 이제 러시아가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정보, 통신으로부터 이를 기반으로 세워진 신경제 시스템도 이처럼 유라시아 대륙과 서방 해양 세력의 분리와 균열이 심화될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처럼 서방의 플랫폼과 기술혁명의 흐름을 따라 세워지는 선교 전략과 방편들은 비서구권의 선교과제 지역에는 무용지물이 될 뿐입니다. 오히려 혐오와 박해의 목표물로 작용하겠지요. 일명 보안지역으로 일컬어지는 선교 과제 지역의 경우가 모두 이에 해당합니다.
이제 팬데믹에 연이은 명백한 시대 전환의 시점에 물질과 기술문명에 기댄 것이 아닌 진리의 본질과 그 역동성을 따른 현장에서의 삶의 실천과 영향력으로 초점을 기울여야 할 시절입니다. 침묵 속에서 세상 끝까지 울리는 함성을 질러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 능력과 이를 따르는 삶입니다.
갈라지고 막혀진 민족과 언어, 문화의 장벽을 넘어 하나 되는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를 교회의 실제로 이뤄야 합니다. 세상의 소자와 버려진 이들을 향한 걸음을 옮기며 함께 살아가는 몸으로의 실천입니다. 함께 일하고, 먹고, 나눔으로 가르침을 이루는 삶입니다. 이제 다시 신앙의 본질을 확인하고 밀알과 누룩의 생명과 영향력을 간직한 교회와 선교의 실체를 이루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세계는 서구 해양 세력의 대표 격인 G7과 비서구권 대표들의 연합체인 BRICS를 필두로 갈라지고 있습니다. 서방과 비서구권이 합쳐진 G20도 이미 균열과 해체의 길로 접어든 시점인 것 같습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도 이를 시작한 미국의 탈퇴로 그 의미가 퇴색되었구요. 이제 더이상은 서구 중심의 세계화의 시절은 떠나간 셈입니다.
한 세대, 심지어 두 세대 전의 근대적 기독교의 이름으로 치장된 서구 편향의 물질과 실용주의, 자기중심 사고에서 오늘을 직시하고 자신을 도구로 내려놓고 그분을 따르며 세상을 섬기는 종의 길을 찾아 걸음을 옮기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또 4차 산업혁명의 본산인 미국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선교나 그 전략에 대해 BRICS와 비서구권 선교의 관점을 물질문명 우위의 서구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합당한가를 두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과학기술 문명의 혁신은 세계화를 기반으로 짜인 경제 시스템을 토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한 세대 동안 진행된 이 흐름은 급속한 환경 파괴와 지역별, 계층별 격차 등으로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운 형편이 된 줄로 여겨집니다. 그 증거가 팬데믹과 신냉전의 전개로 보입니다.
이제 지속 가능한 사역을 준비하며 선교과제를 완성토록 아직도 남겨진 비서구권의 형편과 관점에서 선교의 접근법을 찾았으면 합니다. 경제, 문화, 기술의 우위를 근거로 하는 접근은 이전 시대 서구선교의 오류를 반복하는 일이 아닌지 염려가 됩니다.
시베리아 사역 현장에서 만나 때론 협력하고 교제했던 BRICS 국가 출신의 선교사 중 브라질 출신 오순절 선교사들을 떠올립니다. 주로 젊은이들이고 이제 장년 세대로 이어지는 모습입니다. 러시아도 기성의 전통적인 교회보다 개방 후 시작된 오순절 계통의 교단들이 한 세대를 지나 개신교인 중 다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주제를 중심으로 숙고하면 세계화 시대의 패권국인 미국의 영향력이 만든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정보기술 혁명, 할리우드, 기축통화로의 달러... 한국선교가 한류와 한국기업의 약진을 토대로 그 뒤를 이어가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대 전환의 시점에 이것이 이어져 계승될 수 있는가의 질문이 있습니다. 기성세대의 교리, 이념 중심의 양극화 된 사고와 표리부동의 이중적인 삶의 태도보다 실용적인 모습이 더 진실하고 실제적이라는 것이 설득력이 있긴 합니다.
MZ 세대의 성향이 이와 같습니다. 세계화의 열매와 정신으로 태동된 신인류의 등장이라 할만합니다. 그러나 신냉전과 탈세계화 시대로의 전환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현실에 대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한번 시작된 세계적인 문화의 흐름과 영향력은 쉬이 사그라지지는 않겠지만 이 또한 영원하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앞으로 가속화될 시대 전환의 상황에 지속 가능한 선교의 대안을 찾아 뿌리를 내리는 과제를 생각합니다. 중국의 대국굴기에 따른 선교사의 대대적인 추방과 박해를 시작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전성기를 이루었던 서구식 선교의 전형적인 패턴을 따른 국가적인 성공의 예가 우리 눈앞에서 무너지는 비극을 대하는 현실입니다.
오늘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정신적인 흐름의 배후를 들여다보면 바로 이러한 문화 배경의 패권 경쟁과 지정학적인 갈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물론 단기적인 승패의 결과는 어찌 됐든 얼마의 시간을 두고 판가름이 나겠지만 세계 지각 변동의 파열음이 나는 상황이 이전의 틀로 묶여있기는 어렵다는 판단입니다.
앞으로의 방향과 대안
세계화의 유산을 배경으로 새롭게 전개되는 신냉전의 탈세계화 시대는 이미 세계화 시대에 개별의 정체성을 보존하며 통합적인 문화와 기술문명의 이점을 취하는 "Glocal"의 모토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으리란 생각입니다.물론 지정학적인 분열의 강도가 통합을 통한 실용과 효과의 경제적인 유익보다 패권 유지를 우선순위로 한 추구로 우위인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를 고려해 본다면 세계화로 약화되었던 "Local"의 전통적인 세력이 권역별 제국화로 반격에 나선 것이 아닌가 판단됩니다.
콘스탄틴 이후부터 진행된 교회의 권력에의 추종과 시녀화, 이를 따른 세속화의 물결이 세계적인 수준에서 진행되던 걸음에서 한 단계 후퇴와 조정을 거치는 국면으로 여겨집니다. 이를 각 진영의 관점에 따라 기존 서구의 패권을 기초로 자유의 후퇴나 혹은 반대 입장에서 세속화로부터의 영성의 회복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와 선교의 본질은 세상의 패권과 권력에 있지 않습니다. 그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과 타자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밀알과 누룩의 생명력이 그 본질과 터전입니다. 따라서 그 생명력을 간직하고 번식하는 유기체인 공동체가 근간입니다.
오는 시대 선교의 대안은 여기에 있습니다. 어떻게 신앙의 생명력을 간직하고 유지하며 번식할 수 있을까, 그 영향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세상의 흐름에 따라 쓸려가는 것이 아닌 거친 생명력으로 시대의 조류를 거스르는 몸짓입니다. 그 힘이 세상의 흐름을 이겨낼 때 또 다른 생명은 잉태되어 강과 바다를 유유히 헤엄치는 무리가 될 겁니다.
문명의 교차지 갈릴리 외딴 시골 소수의 무리가 세상을 바꾸었고, 또 박해받아 흩어진 무명의 제자들이 세계 제국인 로마를 뒤엎고 땅 끝까지 나아가 역사를 새롭게 썼습니다. 오늘도 변방의 작은 무리가 시대의 격변을 헤치고 예수 생명으로 문명과 제국, 시대를 넘어 세상을 그리스도의 나라로 세워갈 것을 믿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
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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