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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스토리 31강 / 연합국 전투, 갈렙 그리고 안식(수 10-24장) / [한국어, 영어 본문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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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2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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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국 전투, 갈렙 그리고 안식
계속되는 하나님의 나라, 가나안 땅 정복 전쟁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해 두시고 하나님이 ‘가라’하신 ‘하나님의 땅’입니다.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시험을(출 15:25, 16:4, 20:20/ 신 8:2,16, 13:3) 통과해야만 합니다. 사단은 넘어뜨리기 위한 유혹을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면 반드시 피할 길이 있습니다(고전 10:13). 하나님만을 바라며 하나님의 방법대로 싸워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으므로
기브온은 큰 성이고 그 사람들은 강함에도 이스라엘과 화친하므로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들이 연합하여 기브온에 대진하자(수 10:1-5) 기브온에서 여호수아에게 사람을 보내어 도움을 청합니다(수 10:6). 그래서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용사와 더불어 전쟁을 위하여 올라갈 때에 하나님이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 그들 중에서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수 10:8)고 하십니다. 그리고 시작된 전쟁에서 하나님은 그 연합군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셨고(수 10:10)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큰 우박덩이를 내리시어 칼에 죽은 자보다 더 많은 자를 죽이셨습니다(수 10:11).
또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기도를 들으시고 태양과 달을 멈추시므로(수 10:12-14) 하나님이 적군을 넘겨주신 전쟁에서 (수 10:19) 승리를 거두고 다섯 왕들의 목을 발로 밟고 죽여 나무에 매달았다가 그들이 숨었던 굴 안에 던지고 큰 돌로 막아버립니다(수 10:20-27). 이후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분이 발뒤꿈치를 상하는 상처를 입겠지만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을(창 3:15) 예표하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막게다’(수 10:28), ‘립나’(수 10:29,30), ‘라기스’와 ‘게셀’(수 10:31-33), ‘에글론’(수 10:34,35), ‘헤브론’(수 10:36,37), ‘드빌’(수 10:38,39)을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호흡이 있는 모든 자는 다 진멸’하여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합니다(수 10:40). 또한 여호수아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사 그리고 온 고센 땅을 기브온에 이르기까지 쳤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으므로 여호수아가 이 모든 왕들과 그들의 땅을 단번에 빼앗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수 10:41,42). 심장에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과 같이 여기고, 그 말씀에 근거하여 순종하며, 그 말씀에 근거하여 범죄치 않고, 그 말씀에 근거하여 기도하고 소통해야 함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는 다섯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믿음으로 전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적군을 넘기실 뿐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의 전쟁을 친히 싸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통해 드러난 이스라엘 백성의 증언은 ‘전적인 타락’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지도 않았고 하나님께 순종하지도 않았으며 끊임없이 하나님께 범죄하였고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바로 성경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말 앞서 설명한대로 모든 것을 지켰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작아질 것인데 그들은 철저히 패역했기에 그럼에도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필연성이 더 커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불가능함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가 이제 사사기를 시작으로 이스라엘의 멸망까지 갈 것입니다.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그들의 병거를 불사르라
이전 연합국과의 전투가 아모리 족속들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가나안 전역에서 족속들과 왕들이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는데 그 모습이 해변의 수많은 모래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습니다(수 11:1-4).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현실’이라고 부릅니다. 현실적으로는 이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전쟁을 하며 성장한 족속이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종살이 수백년 하다가 이제 막 광야 40년을 지나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몇번의 전쟁을 치뤘지만 이들의 전략적인 전쟁이 아닌 하나님이 싸우신 ‘하나님의 전쟁’이었습니다. 이 ‘현실이라는 두려움’은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12 정탐꾼 중 10명에게 보였던 아낙 자손과 같고 사울과 백성들 앞에 40일을 밤낮으로 나온 골리앗과 같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이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신 20:1)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전쟁의 관건은 적군의 강함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함께하심’입니다. 적군이 많아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승리하는 것이고 적군이 적어도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면 패배하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아이 성 전투에서 그 사실들을 확인하고 넘어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관건은 바로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범죄치 않고 쉬지 않고 하나님과 소통하면 하나님이 하시는 전쟁에서 승리를 목격하는 것 뿐 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도움, 구원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전쟁을 위해 모든 군대가 이스라엘 앞에 섰는데 하나님은 ‘그들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일 이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넘겨 주어 몰살시키리니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그들의 병거를 불사르라’(수 11:6)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적군을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쳐죽이고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 합니다(수 11:7,8,10-14). 그런데 여기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넘겨 주어 몰살시키리니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그들의 병거를 불사르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쟁의 승리를 주신 후에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순종의 행위가 바로 당시 전쟁의 최고의 무기였던 ‘말’과 ‘병거’를 확보하고 다음 전쟁을 준비하느냐 아니면 다음 전쟁도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싸우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믿음의 전쟁을 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었습니다(삼하 8:4/ 대상 18:4).
이것은 절대로 쉬운 문제가 아니었지만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합니다(수 11:9).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렇게 하나님의 명령을 다 행하였다고 합니다(수 11:15). 바로 이 관계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모세도 여호수아도 왕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연결하는 ‘안내자’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남았더라
성경의 기록은 단숨에 요단을 건너 들어와 전쟁에서 단숨에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전쟁은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수 11:18). 그리고 가나안 온 땅이 점령되고 전쟁은 그쳤습니다(수 11:23). 그리고 성경은 이스라엘이 쳐죽인 왕들을 기록합니다(수 12:1-24). 그런데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을 진멸한 것처럼 보이지만 완전 정복을 하지는 못합니다. 아직도 남겨진 가나안 족속들이 있었고(수 13:2-7) 특히 성경은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남았더라’(수 11:22)고 합니다. 지금은 연약하고 조금 남은 듯 보이는 이곳은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생활의 또 다른 올무로 작용할 것입니다(출 34:12/ 신 12:30/ 수 23:13/ 삼하 21:1-14). ‘가사’는 사사 삼손이 눈뽑히고 맷돌을 돌린 곳이고(삿 16:21) ‘가드’ 족속에서는 골리앗이 나왔으며(삼상 17:4) ‘아스돗’은 빼앗긴 하나님의 법궤가 있던 곳입니다(삼상 5:1-5). 이 완전 정복의 실패는 여호수아의 한계일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한계이고 더 나아가 구약의 한계이고 율법의 한계이며 죄인인 인간의 한계입니다. 여호수아와 같이 신실하게 최선을 다해도 도움, 진정한 구원자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지속적으로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분배하여 기업이 되게 하라
이제 여호수아는 나이가 많아 늙고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습니다(수 13:1-7). 여호수아는 르우벤, 갓 그리고 므낫세 반지파에게 요단 동편 땅을 가족에 따라 기업을 분배하고 경계를 정해줍니다. 오직 레위 지파에게만 기업을 주지 않았는데 이는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수 13:8-33). 이어 여호수아는 남은 아홉 지파와 반지파에게도 그와같이 땅을 나누어줍니다(수 14:1-5). 이제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을 정복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계속해서 정복 전쟁은 하겠지만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지도, 쫓아내지도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들의 필요를 위해 모두를 쫓아내지도 않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그 때에 유다 자손의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자신이 40세에 12 정탐꾼의 한명으로 정탐을 하였지만 성실한 마음으로 고백한 것과 모세가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수 14:9)고 했던 약속을 들고 옵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 45년의 시간이 지나 자신은 85세이지만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수 14:12)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갈렙은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이라고 고백하는데 하나님은 그의 고백과 같이 함께해 주심으로 그 산지 땅을 정복합니다(수 15:13-19).
지금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을 분배하고 있는 시점에 모두들 정복하기 쉽고 살기 좋은 땅을 원하는 때에 갈렙은 가장 어려운 땅, 누구도 원하지 않는 땅인, ‘산지 땅’을 먼저 선택함으로 믿음의 사람으로 서고 있습니다. 지금 유다 자손인 갈렙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 서 있는 것입니다. 나이 85세면 전투에 불가능한 나이입니다. 더욱이 산지 땅을 공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천한 자리에 낮은 자리에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심으로 십자가에 죽으실 것입니다. 불가능한 상황을 하나님으로 이기실 것입니다. 가나안 전투는 이와같이 가장 연약한 하나님의 백성이 가장 강하신 하나님을 붙들어야 하는 전쟁입니다.
또한 우리는 다시 주의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자, 이삭의 순종을 본받자’가 아님을 살펴보았습니다. 그와같이 ‘여호수아의 순종을 본받자, 갈렙의 믿음을 본받자’로 가서는 안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설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그들과 함께하신 하나님 때문임을 절대로 놓쳐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들에게 은혜와 능력을 주신 하나님께 집중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도 쫓아내지 못하였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대가 일단은 가나안 족속들과의 큰 전쟁에서는 승리를 했지만 정복을 하고 거주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하라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신 20:16-18)고 하신 명령대로 하여야만 합니다. 그래서 2차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유다 자손이 나아갔는데(수 15:1-63) 갈렙이 ‘그 산지’를 정복한 것과 달리 성경은 ‘예루살렘 주민 여부스 족속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오늘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수 15:63)고 말합니다. 또한 에브라임 자손이 나아갔는데(수 16:5-10) 성경은 ‘그들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오늘까지 에브라임 가운데에 거주하며 노역하는 종이 되니라’(수 16:10)고 말합니다. 또한 므낫세 반지파가 나아갔는데(수 17:1-13) 성경은 ‘므낫세 자손이 그 성읍들의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다’(수 17:12)고 말합니다.
2차 가나안 전쟁의 선두였던 유다 자손도 그리고 요셉 자손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반지파도 가나안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기도 하였지만 쫓아내지 않기도 하였습니다. 힘이 없어 쫓아내지 못하기도 하였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고 쫓아내지 않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요셉 자손은 그들이 분배 받은 땅이 적다고 여호수아에게 말하지만 여호수아는 ‘스스로 개척하라’고 합니다. 그들은 다시 그곳은 ‘산지이고 철병거’가 있다고 하지만 여호수아는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수 17:18)고 합니다. 요셉 자손이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붙들고 계신 하나님이 강하신 것인데 갈렙과 같은 믿음이 아니고서는 그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이제 요단 동쪽의 2 지파와 반지파 그리고 가나안 2차 전쟁을 먼저 치른 2지파와 반지파해서 모두 5지파가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이제 남은 7지파의 차례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점령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수 18:3)고 하며 땅을 베냐민 지파에게(수 18:11-28), 시므온 지파에게(수 19:1-9), 스불론 지파에게(수 19:10-16), 잇사갈 지파에게(수 19:17-23), 아셀 지파에게(수 19:24-31), 납달리 지파에게(수 19:32-39) 그리고 단 지파에게(수 19:40-48) 분배하고 땅 나누는 일을 마칩니다(수 19:51).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이미 하나님이 모세에게(민 35:9-34) 말씀하시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한(신 19:1-13) ‘도피성’에 관해서 다시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수 20:1-9). 고의로 살인한 자들은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 하지만(민 35:21/ 신 19:11-13) 부지중에 사람을 죽인 자에 대해서는 피할 길을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수 20:3,5,9). 그들은 그들이 피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도피성으로 피하였다가 대제사장이 죽으면 본 성읍 거주지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바로 대제사장으로, 그 길 자체로 오셔서(요 14:6) ‘자유’를 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요 8:32).
여호와께서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으되
이제 가나안 정복 전쟁이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레위인들을 위한 성읍과 목초지를 분배하고(수 21:1-42) 요단 동쪽 땅을 차지하기로 한 르우벤, 갓 그리고 므낫세 반지파를 보냅니다(수 22:1-34). 여호수아는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한 명령과 율법을 반드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니라’(수 22:5)는 말을 잊지 않습니다. 비록 그들이 가는 길에 쌓은 제단으로 말미암아 오해가 있었지만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의 중재로 그 제단은 이방신을 제사하기 위한 제단이 아닌 후일 오고 오는 세대들에게 요단 동쪽과 서쪽이 한 하나님을 섬기는 한 나라임을 증거하기 위함임이 밝혀집니다(수 22:21-31). 이제 여호수아의 마지막 말을 남겨둔 상황에서 성경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안식을 주셨다고 기록하지만(수 21:43-45) 이것은 잠시 하나님이 주신 맛보기와 같은 안식이지 성경에서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궁극적인 안식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히 4:8,9).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하신 일이 있듯이 여호수아를 통해서 하신 일이 있었고 이제 그 일들을 마무리 하십니다. 먼저 여호수아는 온 이스라엘을 불러 다시 한번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싸우셨음을 상기시키고(수 23:3) 그들이 분배한 땅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행하실 것을 말합니다(수 23:5). 그리고 다시 잊지 않고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수 23:6)고 말합니다. 이것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스스로 조심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께 범죄하지 말라고 하는데 만일 범죄하면 하나님이 징계하심으로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하나님이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신 것과 같이 징계도 반드시 행하실 것입니다(수 23:7-13). 하나님의 복이 아닌 징계를 피하는 길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원하심을 알아 행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이제 여호수아는 아브라함으로 시작해서 모세의 출애굽 홍해 사건 그리고 광야 시절을 거쳐 가나안 전쟁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돌보심을 회고합니다(수 24:1-13). 그리고 그들에게 앞으로 ‘누구를 섬기며 살 것인지에 대한 결단을 촉구합니다. 여호수아는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는 분명한 뜻을 밝히고 이스라엘 백성 역시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수 24:16),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수 24:18)라고 고백합니다.
그러자 여호수아가 한번 더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수 24:20)고 강조하고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수 24:21)고 합니다. 이정도면 될듯한데 여호수아는 ‘너희가 여호와를 택하고 그를 섬기리라 하였으니 스스로 증인이 되었느니라’(수 24:22)고 하고 백성들과 언약을 맺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고 그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 그들이 부인하지 못하도록 증거를 삼습니다(수 24:25-27). 그리고 여호수아는 그의 사명을 다함으로 죽습니다(수 24:29). 그런데 성경은 ‘이스라엘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수 24:31)는 여운있는 말을 남기며 여호수아서를 끝 맺습니다. 그 여운의 의미를 다음 성경인 사사기에서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성경은 다 정복하지 못한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반복되는 up and down의 이야기를 향해 달려갑니다. 그렇게 소원하고 바라던 하나님의 땅, 가나안에서 하나님과 알콩달콩 살아도 부족한데 쉬지 않고 반복되는 범죄 가운데 ‘복은 복대로 벌은 벌대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끊임없이 얻어 터지는 이야기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들도 속이 터지고 지켜보는 우리도 속이 터지겠지만 하나님은 변함없이 그들을 붙드시는 그 열심의 이야기가 바로 성경 이야기이며 바로 우리의 이야기인 것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 이야기, 그 사랑의 이야기, 그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열심의 이야기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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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iances Battle, Caleb and Rest
21세기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스마트 폰에 의해 세상이 휘둘리고 있습니다.
이젠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는 없어져가고 유투브를 앞세운 SNS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이 생명임을 믿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on라인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는 사역이 "21세기 말씀의 삶" 사역입니다.
21세기 말씀의 삶ㅣ다음 세대 말씀 영상 사역
홍요셉 목사(성경교사, 제자훈련자, 역사연구가, 중동선교전략가) / 이메일 hfamilyf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