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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스토리 33강 / 아비멜렉, 입다, 삼손, 레위인(삿 9-21장) / [한국어, 영어 본문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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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20-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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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멜렉, 입다, 삼손 그리고 레위인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전쟁에서 홍해를 건너는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능하심을 드러내시고, 광야에서도, 요단을 건너기 전에도, 요단을 건널 때에도, 요단을 건너 가나안 전쟁 때에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음을 보이셨습니다. 여호수아의 간구에 태양을 멈추셨고(수 10:12-14) 사사 바락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때는 자연만물을 통해서도 역사 하셨습니다(삿 5:20-21). 하나님은 얼마든지 ‘자연 재해’를 통해서도, ‘전염병’을 통해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가나안 족속을 진멸시키시고 몰살시키시고 다 몰아내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가나안 족속도 없고 그들이 섬기던 우상의 흔적도 없는 곳에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가 하나님 말씀대로 하나님만을 바라면서 살도록 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명령으로는 모두 진멸하라(신 20:16-18) 하셨지만 하나님이 가나안 족속을 남겨두십니다(삿 2:21-3:4). 아니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족속을 남기는 것을 허용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로 말미암아 ‘가나안인’이 되고 가나안의 신들을 섬기며 하나님을 버릴 것을 알고 계십니다(신 31:20,21/ 삿 3:5,6). 우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 데리고 들어가서 하나님이 뜻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시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오히려 성경은 그렇게 애굽에서부터 광야를 거쳐 가나안 전쟁까지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버리고 속히 가나안인이 되어 가나안의 신을 섬길 수밖에 없는 그들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 냅니다. 그리고 그들을 역사에서 심판하심으로 진정한 구원은 부족한 인간 사사들과 이 땅의 사람 왕을 통해 임시로 오는 것이 아닌 오직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이 창조 전에 만들어 놓으신 영원한 곳 ‘새 하늘과 새 땅’임을 역사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실패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 잘 하리라고 기대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반복하여 범죄함으로 매번 놀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대로 진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누가 다스리는 것이 나으냐
기드온이 죽고 그의 세겜의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이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이 다 너희를 다스림과 한 사람이 너희를 다스림이 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삿 9:2)는 말로 세겜 성 사람들을 충동하여 기드온의 아들 70명을 죽이고 세겜의 ‘왕’이 됩니다(삿 9:6). 그 말을 들은 기드온의 막내 아들은 아비멜렉과 세겜을 저주합니다(삿 9:7-21). 그리고 3년이 흐릅니다(삿 9:22). 이후 하나님이 ‘악한 영’을 보내심으로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게 하시고(삿 9:23) 서로 싸우고 난리치다가 결국 아비멜렉은 이 세상에서 악한 행위로 3년 왕하고 한 여인이 던진 맷돌 위짝에 맞아 두개골이 깨지고 칼에 찔려 죽습니다(삿 9:53,54). 성경은 세겜의 악행도 아비멜렉의 악행도 다 하나님이 갚으셨다고 합니다(삿 9:56,57). 성경은 계속해서 하나님이 이 땅에서 악을 행해서라도 왕이 되고자 하는 우리의 모습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을 드러내고 계신 것입니다.
사사들도 똑같았더라(1)
기드온의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 사건 이후 성경은 두 명의 사사를 사역 기록없이 삶의 단면만을 말합니다. 사사 돌라는 이스라엘을 구원했는데 23년간 사사로 있다가 죽었고(삿 10:1,2) 사사 야일은 22년 동안 사사였는데 그는 어린 나귀 30을 탄 아들들이 30명이었고 30성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들만 30명 이었으니 딸까지 하면 몇명인지 모릅니다. 이름은 사사였지만 ‘왕의 삶’을 살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여 이방 신들을 섬기고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여 하나님이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그들을 파시매 18년동안 고통을 받은 백성들은(삿 10:6-9)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내가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 또 시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마온 사람이 너희를 압제할 때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므로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였거늘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너희의 환난 때에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삿 10:11-14)고 하십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이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하고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겼다’(삿 10:15,16)고 합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관계의 회복’을 말씀하시는데 이들은 ‘상황의 회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일단 지금의 어려움만 해결해 달라는 것입니다. 아직 이들에게 ‘새 마음’, ‘새 영’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삿 10:16)고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하나님의 땅, 아브라함 때부터 말씀하신 그 땅에 들어온 하나님의 백성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버렸다’(삿 2:12,13, 10:6,10,13)고 말합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은 ‘내가 왕이다’ 하시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 송아지’(출 32:1-6)를 시작으로 ‘놋뱀’(민 21:4-9)을 품더니 ‘기드온’(삿 8:22)과 ‘아비멜렉’(삿 9:6)을 지나 하나님이 사사로 쓰실 ‘입다’에게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삿 11:6)고 합니다. 이들에게는 누가되었든 그들에게 ‘승리’를 주면되고 ‘풍요’를 주면 되는 것입니다(삿 10:18).
기생의 아들이었던 입다는 ‘당신이 우리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는 말에 결국 백성의 머리와 장관이 됩니다(삿 10:17-11:11). 입다는 암몬 왕에게 사자를 보내는데 그가 구약 신명기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삿 11:14-27). 이 말은 입다도 알고 있었으니 이스라엘 백성도 신명기의 말씀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입다가 보낸 사자의 말을 듣지 않은 암몬과 전쟁을 하게되고 입다는 어리석은 불신앙의 서원을 하게 되는데 사사 기드온과 같이(삿 6:34-40)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한 후입니다(삿 11:29-31). 전쟁은 하나님이 대적을 입다의 손에 넘겨주심으로(삿 11:32)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삿 11:33).
그리고 입다는 자신의 어리석은 서원대로 자신의 딸을 죽여야했고(삿 11:34-40) 기드온 때와 같이 에브라임 사람들과 시비가 생기는데 기드온이 부드럽게 넘어갔다면(삿 8:1-3) 입다는 에브라임과 전쟁을 해서 에브라임 사람 42,000명을 죽입니다(삿 12:1-6). 그리고 사사로 6년을 지내고 입다도 죽습니다(삿 12:7). 성경은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 사사들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계속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 자체도 부족하고 연약하고 심지어 악하지만 하나님이 사사를 세우시면 구원하심으로(삿 2:18) 대표성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이후에 진정한 대표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말입니다.
사사들도 똑같았더라(2)
사사 입다 이후 3명의 사사를 사역 기록없이 삶의 단면만을 말합니다. 사사 입산은 7년간 사사로 있었고 아들 30명에 딸 30명을 두었는데 딸들은 이스라엘 밖으로 시집을 보내고 아들들을 위해서도 이스라엘 밖에서 여자 30을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삿 12:8-10). 직분은 사사였지만 자기 원하는대로 살았습니다. 입산을 이어 사사 엘론은 10년간 사사로 있다가 죽었습니다(삿 12:11,12). 그리고 엘론을 이어 압돈이 8년간 사사로 있었고 아들 40명과 손자 30명이 있어 어린 나귀 70마리를 탔다고 합니다(삿 12:12-15). 사사로 있는 기간이 짧은데 아들만 40명이었으면 사사가 되기 전부터 권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름은 사사였지만 왕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진짜 사사이며 진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시어 ‘인자’로, ‘종’으로 사셨습니다.
태에서부터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여 하나님이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그들을 40년동안 넘겨주십니다(삿 13:1). 하나님은 다른 사사들을 장년의 모습에서 부르신 것과 달리 출생 전부터 삼손을 구별하시고 태에서부터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으로 그를 통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삼손이 태어나자 하나님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합니다(삿 13:2-25). 이 때 보냄을 받은 사자는 이미 앞에서도 그러하고 이후로도 그러하지만, 하나님과 함께 천지를 창조하시고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약적 모습입니다(삿 13:18).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삼손은 나실인으로 부름받았는데 나실인은 구별된 자들입니다(민 6:21). 이 나실인의 계보는 삼손(삿 13:2-5)과 사무엘(삼상 1:5,19,20)을 지나 세례 요한(눅 1:5-25, 57-66)과 예수 그리스도(눅 1:26-35, 2:1-7)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나실인의 구별됨은 ‘왕’, ‘선지자’ 그리고 ‘제사장’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볼 수 있고 심지어 하나님의 백성은 모두가 구별된 백성으로(출 33:16/ 레 11:44, 20:24,26) 영적 ‘나실인’입니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이들이 자체적으로 거룩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삼손은 분명 사도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태어나기 전부터 선택되었고 구별되었습니다(삿 13:5). 그러나 그는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합니다. 나실인으로서 시체는 부모와 형제 자매의 경우에도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하는데(민 6:6,7) 죽은 사자의 몸에서 꿀을 떠서 먹었고(삿 14:8,9) 포도주와 독주 뿐 아니라 포도나무 소산은 씨와 껍질이라도 먹어서는 안되는데 술이 빠질 수 없는 잔치를 즐기고(삿 14:10-20) 여러모로 사사로서도 나실인으로서도 우리가 기대하는 ‘영적 영웅’의 모습은 아닙니다. 또한 삼손은 다른 사사들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압제하는 나라와 전쟁을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하나님은 삼손을 통해서 삼손을 영웅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그의 삶의 단면들을 통해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먼저 성경은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삿 14:4)고 하여 삼손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블레셋 땅에 갔다가 그들의 ‘성문’을 빼어 가나안 땅에 들어옵니다(삿 16:1-3).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이(창 22:17) 삼손을 통해서 1차 이루어지고 다윗을 통해서 블레셋이 전멸되고 마침내 아브라함의 씨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최후 승리가 있을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삼손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부분적이었지만 다른 사사들 보다 더 함께하였습니다(삿 13:25, 14:6,19, 15:14). 삼손이 자격이 되어서가 아니라 삼손의 부족함에도 하나님이 행하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끝으로 삼손은 죽음을 통해서 블레셋에게 치명적 패배를 남깁니다. 후에 성령을 한량없이 부으심 받을 예수 그리스도가(요 3:34) 이 땅에서의 역사적 죽음을 통해서 최후 승리를 하실 것을 말합니다.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사사기의 마지막 사사 삼손 이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 백성의 패턴은 ‘범죄’, ‘징계’, ‘부르짖음’, ‘구원’, ‘평온’ 그리고 다시 ‘범죄’의 악순환이었습니다. 그런데 삼손이 사사로 있던 때, 블레셋에 의해 다스림을 받을 때는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음’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전에도 악했지만 그래도 ‘어려울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이젠 아예 블레셋의 다스림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다스림 안에서 잘 살아보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들은 부족해도 삼손이 사사인 것을 압니다. 입다의 경우도 이스라엘 백성이 아쉬우니까 이복 형제들에 의해 쫓겨난 입다를 데리고 와서 전쟁을 하는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 삼손을 살려 블레셋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블레셋의 다스림을 즐기며 사사 삼손을 결박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깁니다(삿 15:9-13). 이것이 악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하는 악보다 더 무서운 것이 ‘하나님을 등지는 것’입니다.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20년 동안 지냈더라
성경은 삼손이 사사로 20년을 있었다고 합니다(삿 15:20, 16:31). 그러나 그는 보기에 좋은대로 여자를 취하다가(삿 14:1, 15:1, 16:1,4) 여인으로 말미암은 싸움을 싸웠고 살인을 했고(삿 14:19, 15:3-17) 계속되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무시하다(삿 14:19, 15:18,19, 16:3) 마침내 여자로 말미암아 머리가 밀리고 눈이 뽑히고 가나안 정복 때 조금 남겨진 곳 ‘가사’의 감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됩니다(삿 16:4-21). 사사로 20년, 200년을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사 다운’ 사사로 있어야 합니다. 이제 이와 같은 비참한 이야기들을 ‘왕들의 이야기’에서 볼 것입니다. 악한 왕이 오래 통치하는 것은 백성에게는 ‘비극’인 것입니다.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삼손은 머리털이 밀림으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삼손의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하였다’(삿 16:22)는 말로 끝까지 삼손을 놓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삼손이 죽음을 통해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다’(삿 16:30)고 성경을 말합니다.
사사기의 마지막 사사인 ‘삼손’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단면입니다. 이미 삼손이 출생 전부터 선택을 받아 구별이 되었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도 출애굽 이전부터 구별되었습니다. 삼손이 ‘나실인’으로 부름받은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도 ‘거룩한 백성’, ‘성민’으로 부름받았습니다. 삼손이 ‘구별된 삶’을 살아야 했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도 ‘구별된 삶’을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삼손을 ‘여호와의 영’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도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인도를 하였습니다. 삼손이 결국 실패하고 죽은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도 결국 실패하여 광야에서 죽었고 가나안에서 멸망 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습 그대로가 우리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나 삼손의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우리에게도 소망이 있습니다. 바로 삼손과 같이 출생 전에 예고되어 온전한 나실인으로 구별된 삶을 살고 하나님의 충만한 영으로 하나님에 의한 삶을 온전히 사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주인공은 어떤 사사도 아닌 진짜 사사이신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왕이 없으므로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이제 사사기가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기드온의 전쟁 때도(삿 8:1-3) 입다의 전쟁 때도(삿 12:1-6) 문제를 일으킨 ‘에브라임’과 그들이 머물던 ‘산지’ 중심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을 ‘에브라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호 6:4). 그러므로 사사기의 남은 이야기는 바로 이스라엘의 전체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바로 그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돈을 훔쳤는데 어머니는 그에게 오히려 복을 빌고 그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어 집에두고 이미 신당이 있었으므로 ‘에봇’과 ‘드라빔’까지 만들고 미가는 레위인도 아닌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삼습니다(삿 17:1-5). 그러다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레위인을 만난 미가는 그를 제사장으로 삼고는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삿 17:13)고 합니다. 삶은 엉망인데 모양만 갖추면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17:6)고 합니다.
그리고 그 때에 기업의 땅을 구하지 못한 단 지파가 거주할 곳을 찾다가 정탐으로 보낸 자들이 미가의 집에서 유숙하게 되고 레위인 제사장에게 도움을 받은 후 나중에는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의 한 지파 한 족속의 제사장이 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낫겠느냐’(삿 18:19)는 달콤한 제안을 하는데 이미 미가의 호의로 그의 집 제사장이 될 때에도 만족해하던 레위인 제사장은(삿 17:10,11) 마음이 기뻐 자기 것도 아닌 미가의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받아 단 지파를 따릅니다(삿 18:20). 사명이 없는 레위인은 더 좋은 것을 보니 이전 것을 버리고 더 좋아보이는 것을 물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레위인이 바로 이스라엘의 단면인 것입니다. 성경은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삿 18:1)고 합니다.
다시 에브라임 산지 이야기입니다(삿 19:1). 이번에는 첩을 둔 레위인이 있었는데 그 첩이 행음을 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서는 오지를 않습니다. 그러자 레위인이 그 첩을 데리러 가서 처가집에 며칠을 머물다 마침내 그 첩과 함께 돌아오는 길에 날이 저물자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 지역의 한 노인 집에서 유숙하게 됩니다(삿 19:21). 그리고 그들이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울 때에 성읍 불량배들이 문을 두드리며 노인에게 집에 온 사람을 끌어내라고 합니다. 그와 동성애를 하겠다는 것입니다(삿 19:22). 노인은 이것은 악행이고 망령된 일이므로 자기 처녀 딸과 레위인의 첩을 좋은대로 하라고 합니다(삿 19:23,24). 롯이 살던 소돔지역(창 19:1-11)을 연상케 하는 장면입니다.
마침내 그 불량배들은 그 레위인의 첩을 밤새 능욕하다가 새벽에 놓아주었는데 그 첩은 시체로 발견이 됩니다(삿 19:25-28). 그러자 레위인이 그 시체를 그의 집에 가지고 가서 그 마디를 찍어 12덩이를 내어 이스라엘 사방으로 두루 보냅니다(삿 19:29). 성경은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삿 19:1)고 합니다.
결국 이스라엘 연합군 전사 400,000명(삿 20:17)과 베냐민 지파 26,000명에 기브아 주민 700명의 연합군(삿 20:15)과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연합군은 하나님께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삿 20:18)라고 묻고 하나님이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삿 20:18)고 하셨는데 막상 1차 전쟁에서 이스라엘 연합군이 패하여 22,000명이 죽습니다(삿 20:21). 그래서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서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삿 20:23)라고 묻고 하나님이 다시 ‘올라가서 치라’(삿 20:23)고 하셨는데 2차 전쟁에서도 이스라엘 연합군이 패하여 18,000명이 죽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행한 베냐민 지파를 사용하시어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이스라엘을 징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두 번의 패배 후에 이스라엘 연합군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하나님께 다시 묻는데 그때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신 사람이 바로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 였습니다(삿 20:26-28). 아직 단 지파가 기업의 분배를 받지 못한 것과 함께 비느하스가 제사장이라는 것은 여호수아가 죽고 아직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속히 왕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들의 소견에 옳은대로 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번째 전투에서는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삿 20:28)고 하십니다. 그리고 세번째 전투에서 베냐민 지파는 거의 전멸을 당합니다(삿 20:46-48). 베냐민 지파는 잠시 이스라엘을 징계하는데 사용되었지만 그들도 악을 행했기에 그대로 징계를 받는 것입니다. ‘공평의 법’입니다.
이스라엘 연합군과 베냐민 지파와 기브온 연합군의 전쟁이 끝나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베냐민 사람들에게 딸을 주지 않기로 맹세를 합니다(삿 21:1). 그리고는 큰 소리로 울며 이스라엘 지파 중에 한 지파가 없어진다고 하며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삿 21:2,3). 그리하여 ‘궁여지책’으로 길르앗 야베스 주민 중에서 남자와 동침한 적이 없는 젊은 처녀 400명을 얻고(삿 21:4-13) 실로에 춤을 추러 온 여자들을 붙들어 남은 베냐민 지파 남자에게 아내를 삼게 합니다(삿 21:14-23). 성경은 하나님이 친히 기업이 되어 주신 레위인들이(민 18:20/ 신 10:9, 18:2) 그들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함을 보여줌으로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영적 상태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사사기는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는 반복 구절로 마치게 됩니다.
여호수아서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 답게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과 같이 여기고’, ‘그 말씀에 근거하여 순종하며’, ‘그 말씀에 근거하여 범죄치 않고’, ‘그 말씀에 근거하여 기도하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전진해야 함’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사기를 통해 가나안 땅에 들어온 첫 세대와 그 다음 세대는 여호수아를 통해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명령과는 정 반대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실패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하실 계획이지 이들이 노력과 헌신으로 가나안 땅을 말 그대로 ‘축복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의 땅’을 만들어 세상을 지배하며 세상에서 왕으로 사는 땅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 더 분명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와 절박한 요구가 채워져가는 하나님의 열심의 이야기, 그 사랑의 이야기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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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imelech, Jephthah, Samson, Levites
21세기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스마트 폰에 의해 세상이 휘둘리고 있습니다.
이젠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는 없어져가고 유투브를 앞세운 SNS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이 생명임을 믿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on라인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는 사역이 "21세기 말씀의 삶" 사역입니다.
21세기 말씀의 삶ㅣ다음 세대 말씀 영상 사역
홍요셉 목사(성경교사, 제자훈련자, 역사연구가, 중동선교전략가) / 이메일 hfamilyf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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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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