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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스토리 56강 / 이사야서 (1), 나의 백성이 깨닿지 못하는도다(사 1-35장) / [한국어, 영어 본문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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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21-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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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 (1), 나의 백성이 깨닫지 못하는도다
구약의 역사서가 끝이 나고 시가서를 거쳐 이제 선지서로 들어갑니다. 하나님은 이제 선지서에서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악을 책망하실 것이고 그 죄의 대가로 심판을 선포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로 전에 아가서에서 그 하나님의 백성들, 죄악으로 인해 마침내 멸망할 그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을 살펴보았습니다.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아 4:7)라신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고백은 진심이었습니다. 비록 이제부터 모질게 ‘책망’ 하시고 매몰차게 ‘심판’ 하시겠지만 모든 것은 ‘사랑’을 바탕으로 하며 모든 책망과 심판은 바로 그 사랑 때문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선지서의 두 기둥은 ‘심판’과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해서는 ‘심판’은 하시지만(렘 30:11) 회복을 통해 ‘구원’을 전제로 한 심판을 하십니다. 그리고 그 심판 이전에 왜 심판을 받아야 하는지 ‘책망’을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을 심판하는 데에 도구로 사용되었던 열방들은 ‘구원’이 없는 ‘심판’만 있습니다(렘 30:11). 이들은 잠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징계하시는 데 사용되었다가(사 10:5,6/ 렘 51:20) 하나님의 역사에서 서서히 사라졌고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지서를 읽고 배우며 하나님의 사랑을 찾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자식을 징계하는 부모의 사랑 그리고 아픔을 발견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이사야서의 시대적 배경
이사야서는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사 1:1)로 이사야서의 기록 시기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사야서의 전반부(사 1-35장)는 아직 남유다와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때는 앗수르 제국이 근동 지역에서 신흥 강국으로 등장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전반부에서는 예루살렘 멸망과 바벨론 포로를 앞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가올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의 책망에 대한 내용이 많습니다. 이사야서의 후반부(사 40-66)는 이미 남유다와 예루살렘이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하고 난 이후 바벨론 포로 시대와 포로 귀환 시대를 예언의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의 범죄에 따른 심판이 이루어지고 나서 이제는 심판 이후의 회복과 하나님의 사랑, 은혜 그리고 구원에 대한 내용이 많습니다.
이제 전반부와 후반부 중간에 들어간 ‘히스기야 왕 시대의 역사적 기록’은 이미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의 유다 침공 사건 전후에 발생한 남유다 히스기야 왕 시대를 배경으로 해서 전반부에 연결됩니다. 이 역사 기록은 이미 앗수르의 위협과 앗수르로부터의 구원 그리고 히스기야의 생명이 연장되는 사건을 통해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이 심판의 과정 중에 있지만 반드시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앗수르로부터의 구원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었음에도 교만하여 하나님을 드러내지 못한 히스기야, 히스기야의 이러한 실수가 바벨론의 침입 원인을 제공하여 후반부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이 구약 역사서를 배경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정을 드러내십니다. 이사야서는 구약 선지서의 가장 큰 선포의 주제인 ‘예루살렘 함락’과 ‘바벨론 포로’에 대해 전반부와 후반부에 나누어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는 선지서의 서론이라고 보아도 좋습니다. 이사야서는 이와 같이 전반부와 후반부 그리고 히스기야 왕 시대의 내용이 다른 배경을 하고 있지만 동일한 공통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지서들의 공통점으로 첫째, 하나님의 백성과 열방의 범죄에 대한 심판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의한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입니다. 셋째, 마침내 임할 세상 끝날, 심판의 날에 대해서인데 하나님의 영적 백성, 남은 자들에게는 이날이 구원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럼 이제 이사야로 들어갑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하나님은 ‘내가 나의 백성을 자식으로 기르고 키웠는데 그들은 나를 거역하였고 하다못해 소도 나귀도 주인을 아는데 나의 백성은 깨닫지도 못하고 나를 버리고 나를 업신여겨 등을 돌렸다’(사 1:2-4)고 하십니다. 이어 하나님은 ‘너희들은 매 맞을 일만 하였고 너희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받은 징계로 너희는 온 몸이 상처투성이고 속은 온통 골병이 들었는데도 구원을 받지 못해 황폐하였고 내가 생존자를 조금 남겨두지 않았다면 멸망했을 것이다’(사 1:5-9)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가 너희들에게 받은 번제물과 기름과 피를 다시 가져오지 말고 절기와 안식일과 성회로 모여 악을 행하는 것은 견디지 못하겠다. 이것들은 다 헛된 제물이고 다 쓸모없는 것들이다. 나는 이러한 신앙 행위에 지쳤다’(사 1:10-14)고 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 죄악으로 말미암아 너희 기도를 듣지 않을 것이니 너희는 회개하고 악한 행실을 그치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라’(사 1:15-17)고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키면 너희의 죄악이 용서함 받아 회복될 것이고 다시 마음으로 순종하면 풍성한 삶이 이어지겠으나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멸망하리라’(사 1:18-20)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제 본격적으로 ‘책망’과 ‘위로’, ‘심판’과 ‘구원’을 반복하십니다. 이사야서를 포함한 선지서의 내용을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처럼 ‘책망’과 ‘구원’이 ‘반복 순환’되는 구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날
구원의 선포입니다. 여호와의 날이 임할 것입니다. 그날에는 만방의 많은 백성이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날에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고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사 2:3). 그날에는 칼로 보습을 만들고 창으로 낫을 만들 것이며(사 2:4) 그날에는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입니다(사 2:11,17). 그날에는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경배하려고 만들었던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날에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질 것입니다(사 2:20).
포도원의 노래
책망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포도원이 심히 기름진 산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으셨고 망대를 세우시고 술틀을 파신 후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지만 들포도를 맺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포도원의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포도원의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포도나무는 유다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정의와 공의를 바라셨지만 포학과 부르짖음이 돌아왔습니다(사 5:1-7/ 참고. 렘 2:21).
그런데 이 포도원의 노래는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되어 때에 따라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이 포도원을 해치지 못하게 하리라 나는 포도원에 대하여 노함이 없나니 찔레와 가시가 나를 대적하면 내가 그것을 밟고 모아 불사르리라 그리하여 마침내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라 그들이 그의 결실로 지면에 채우리로다’로 바뀝니다(사 27:2-6). 하나님이 포도원 지기가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후 예수님은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로 말씀하시며 포도원 지기이시고 농부이신 하나님과 친히 포도나무가 되어 주신 예수님에게 붙어만 있으라고 하십니다(요 15:1-5).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은 한바탕 책망을 하신 후에 웃시야 왕이 죽던 그해에(사 6:1) 선지자 이사야를 부르십니다. 웃시야 왕은 남유다 백성들에게는 ‘의지의 대상’이었습니다. 웃시야 왕은 초기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였고(대하 26:4)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대하 26:7) 그 이름이 변방까지 퍼졌고(대하 26:8) 강성하였습니다(대하 26:15). 비록 그는 후에 마음이 교만하여서 이마에 문둥병이 들어(대하 26:19) 죽는 날까지 별궁에서 살았지만(대하 26:21) 웃시야 왕이라는 이름은 백성들에게 큰 의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웃시야 왕이 죽던 해, 남유다의 인간적인 소망이 끊어진 바로 그해에 하나님이 이사야를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사 6:9,10)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질 것인데 누구든 하나님이 귀를 막고 눈을 막는 자들은 ‘듣지도’, ‘보지도’ 못할 것이고 하나님이 듣게 하시고 보게 하시는 자만이 ‘듣고’, ‘보고’ 하나님의 영적 자녀들이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이 내용은 선지서를 지나 예수님의 씨 비유(마 13:11-17/ 막 4:11,12/ 눅 8:10)와 예수님의 말씀에서(요 12:40) 그리고 사도행전(행 28:26,27)을 관통할 것입니다. 복음은 만민에게 전파될 것이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을 자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영접하는 자들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입니다(요 1:12,13, 6:37,44,65, 10:26-29, 15:16).
그리고 하나님의 징계는 ‘사람들을 멀리 옮기시고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입니다. 그러나 그루터기는 남기실 것인데 그 그루터기는 바로 ‘거룩한 씨’(사 6:11-13) 이신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창 22:17,18/ 행 3:25,26/ 갈 3:16).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제 책망을 하신 하나님은 ‘구원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웃시야 왕의 손자인 아하스 왕은 악한 왕이었습니다(왕하 16:1-4/ 대하 28:1-27). 이 아하스 왕 때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을 하여 예루살렘을 공격하였습니다. 그러자 아하스 왕과 백성들의 마음은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습니다(사 7:1,2). 그때에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아하스 왕을 만나 ‘너는 삼가 조용히 하라 아람과 북이스라엘을 두려워하지 말라 낙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사 7:3-9).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아하스 왕을 만나러 갈 때 이사야의 아들인 ‘스알야숩’을 데리고 가라고 하셨습니다(사 7:3). ‘스알야숩’의 뜻은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는 뜻입니다. 남은 자만 돌아올 것입니다(사 10:20-23, 11:10-16). 이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것이고 ‘굳게 믿으라’고 하십니다(사 7:9). 하나님은 그 징조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고 하시는데 아하스 왕이나 남유다가 어떤 선함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열심(사 40:1, 41:8-10,13,14, 42:1-9,10, 43:1-13,15,22-28, 44:1-8,21,22, 45:5-7,18,21,22, 46:3-9, 48:11-13, 49:6,7,13-16,23,26, 51:15,16, 52:3,6, 54:1-10, 55:1,6-9, 59:1-60:3,19, 63:16,17, 64:8,9, 65:17-25. 66:1-4,22)이 반드시 그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각하신 것,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사 14:24,26,27).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의 뜻인 ‘임마누엘’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집니다(마 1:23).
마헬살랄하스바스
하나님은 이사야의 또 다른 아들의 이름을 ‘빨리 빼앗긴다’의 뜻인 ‘마헬살랄하스바스’로 주십니다. 아람의 수도인 다메섹의 재물과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에 옮겨질 것이라는 뜻입니다(사 8:1-4).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 힘인 다메섹과 사마리아를 두려워하며 기뻐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이 기뻐하는 다메섹도 사마리아도 다 앗수르에 의해 무너질 것이고 그 앗수르의 힘은 유다를 목에까지 위협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사 8:5-8). 하나님은 그들이 어떤 위협을 하고 자랑을 한다 할지라도 끝내 시행되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사 8:9,10). 하나님의 백성들은 끊임없이 패역하고 하나님이 아닌 세상을 의지하였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 그대로 늘 그들과 함께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르라고 하십니다(사 8:20).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임마누엘’에 이은 메시야 예언입니다. 예수님이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마 4:15,16)고 하신 말씀을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사 9:1,2). 하나님이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아들을 주실 것인데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되실 것이고 그의 왕권은 점점 커져 나라의 평화가 끝없이 이어질 것이고 그가 다윗의 보좌와 왕국 위에 앉아 이제부터 영원히, 공평과 정의로 그 나라를 굳게 세울 것이라’고 하십니다(사 9:6,7).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열심으로 이루실 것입니다(사 9:6,7). 이루어내고야 마실 것입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이새의 뿌리에서
하나님의 영인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과 여호와의 영의 임하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입니다(사 11:1).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울 것입니다(사 11:10).
그날, 구원의 날에
그날에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사 11:9)입니다.
그날에는 ‘주께서 그의 손을 펴사 그의 남은 백성을 돌아오게 하실 것’(사 11:11)입니다. 그날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십니다. 나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십니다’(사 12:1-6)라고 선포할 것입니다. 그날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사 25:1)라고 선포할 것입니다. 그날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이시여 하나님 외에 다른 권세자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사오나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사 26:1-19)라고 선포할 것입니다.
그날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사 33:2)라고 선포하고 ‘대저 여호와는 우리의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이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라’(사 33:22)고 선포할 것입니다. 그날에는 ‘하나님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살아지리로다’(사 35:1-10)라고 선포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남은 자들에 대한 ‘구원의 날’(사 4:2, 10:20,27, 11:10,11, 12:1,4, 26:1, 27:1,2,12,13, 28:5, 29:18, 30:23, 52:6)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과 열방에게는 심판의 그날(사 2:11,17,20, 3:7,18, 4:1, 5:30, 7:18,20,21,23, 17:4,7,9, 19:16,18,19,21,23,24, 20:6, 22:8,12,20,25, 24:21, 25:9,10, 31:7)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날이 되면 하나님이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실 것입니다(사 27:1).
열방의 심판
애굽, 앗수르와 바벨론을 대표로하는 열방은 하나님의 도구였습니다(사 10:5,6). 그들은 스스로를 자랑하고 교만히 행하겠으나(사 10:13,14) 하나님은 그들의 어리석음을 책망하실 것이고 마침내는 심판하실 것입니다(사 10:15).
하나님은 ‘바벨론’(사 13:1-11, 14:3-23, 21:1-10, 47:1-15), ‘앗수르’(사 10:24-34, 14:24-27), ‘블레셋’(사 14:28-32), ‘모압’(사 15:1-16:14), ‘다메섹’(사 17:1-14), ‘구스’(사 18:1-7, 20:1-6), ‘애굽’(사 19:1-25, 20:1-6), ‘두마’(사 21:11,12), ‘아라비아’(사 21:13-17), ‘환상의 골짜기’와 국고를 맡은 자 ‘셉나’(사 22:1-25), ‘두로’와 ‘시돈’(사 23:1-18) 등에 심판을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심판과 다르게 ‘회복’을 통한 ‘구원’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습니다.
무엇이 죄였나
하나님은 먼저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십니다. 아브라함을 시작으로 다윗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고 하나님을 깨닫지도 못하였습니다(사 1:3).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하였고(사 1:2) 하나님을 버리고 업신여겼으며(사 1:4) 점을 치며 이방인과 손을 잡고 언약하고(사 2:6)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경배하였으며(사 2:8) 하나님 아닌 사람을 의지하였습니다(사 2:22/ 참고. 사 31:1-3). 그들은 제사, 월삭, 안식일,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였고(사 1:13) 입으로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났으며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었습니다(사 29:13).
심지어 그들은 선견자들에게 ‘선견하지 말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고 부드러운 말을 하고 거짓된 것을 보이라’(사 30:10)고 하였습니다. 또한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짝하며 뇌물을 사랑하였고 고아와 과부를 돕지 않았습니다(사 1:23).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공의를 선포하시면서도 ‘구원’을 잊지 않으시는 이야기, 반복되는 ‘책망’ 속에서도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를 끊임없이 주심으로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시는 이야기, 이사야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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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iah (1), My People Don’t Realize
21세기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스마트 폰에 의해 세상이 휘둘리고 있습니다.
이젠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는 없어져가고 유투브를 앞세운 SNS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이 생명임을 믿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on라인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는 사역이 "21세기 말씀의 삶" 사역입니다.
21세기 말씀의 삶ㅣ다음 세대 말씀 영상 사역
홍요셉 목사(성경교사, 제자훈련자, 역사연구가, 중동선교전략가) / 이메일 hfamilyf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