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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전도 보고서 [T국 SH Grice ㅅㄱ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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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20-07-30
흑해 전도 보고서 2014
“토훔”은 T어로 씨앗이라는 말입니다.
하나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열매를 맺는다.
이번 T의 흑해 전도 여행은 한알의 씨앗 이 땅에 떨어짐으로 시작되었다. 우리가 가 는 곳마다 밟은 땅마다, 주님께서 준비해 놓 으신 밭에 심겨질 씨앗을 찾고 계셨다.
T의 북쪽 흑해 지역의 대부분은 AD13세기부터19세기까지, 많은 수도원과 기도원 신학교들이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주변 국가인 러시아, 아르메니아와 그리스의 여러 곳에 서 모여든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삶을 드리면서, 수도와 고행으로 말씀 연구와 신학의 기초를 다지는 일들을 해왔던 유적과 흔적을 많이 찾아볼수 있다.
흑해를 밟는 곳곳마다 수백여개가 넘는 크고 작은 규모의 교회건물 형태를 찾아 볼수 있으나, 어떤 곳은 거의 형태를 알아 볼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어서 방치되고 있었다. 도시중심가의 교회나 수도원 건물의 대부분은 모스크로 바꿔 사용되고 있으며, 크고 작은 규모는학교, 공공기관, 은행\ 음식점 등 심지어는 감옥으로도 사용되어 왔다.
옛 교회의 건물이 모스크로 탈바꿔서 모스크의 상징인 미네랄을 옆에 세워진것을 보면서 아무도 그곳이 교회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으며, 당연히 교회는 더 이상 이 땅에 존재 해서는 않되는 곳이 되었다. 교회건물이 모스크로 바뀐것에 대하여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이들이지만, 주님은 이들에게도 성령의 단비를 부어주면서, 함께 복음을 나누길 원하고 계셨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땅에 떨어져 인간의 힘으로 없애버린다 할찌라도 그 말씀의 힘은,하나의 씨앗이 되어 죽어지지만, 때가 되면 땅의 어두움을 뚫고 다시 세상으로 나와서 크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죽음의 힘을 이기고 다시 사신 부할의 우리 주님을 매일 만나는 것처럼,우리에게 주어 진 영생과 천국은 이 세상의 어떠한 핍박과 고난이 올찌라도, 우리를 그분과의 관계에서 멀리하지 못할것이다.
이른 새벽 이스탄불에서 모두들 각자의 전도지로 가기위하여 흥분과 기대감으로 들떠있었다. 우리 흑해 전도팀은 첫번째 지역인 삼순으로 이동하였다.
삼순 SAMSUN 은 흑해지역에서 아주 중요한 복음의 역활기지를 감당하고 있다. 이곳에서 삼순 아카페 교회를 섬기고 있는 귀한 형제, 올한목사를 만나 볼수 있었다.
흑해는 지역성이 아주 강하며, 고질적인 지역 감정과 자민족의 우월주의, 이교도 배척주 의주가 팽배한 곳이다. 이곳에서 복음적인 교회를 세워서 아름답게 사역을 하고 있는 올한목사와 가족에게 여러차례 협박과 신변에 위험을 받았다. 심지어는 교회에 찾아와서 도움을 준 형제들이 꾸며낸 거짓 보고로 인하여 경찰로부터 여러차례 호송이 되기도 했 지만, 여전히 기쁨과 성령 충만함으로 어려운 사역들을 잘 감당하고 있다. 본인은 위협 당 하고 어려움을 겪는 것을 기쁨으로 감당할수 있지만, 부인과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생 존의 위협과 사회와 가족 친지으로부터 멸시와 따돌림을 당하여 외로워 할때는 정말 힘든다고 한다. 하지만 하루에도 열명이 넘는 교회 방문자들에게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주면 서, 배고픈자들에게 먹이고 그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모습에 많은 도전이 되었다.
올한 목사의 귀한 믿음과 섬김의 본은 자신이 하나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써 맺어지는 열매의 결과인 것을 볼수 있었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피어난 아름답고 향기로운 열매에 감사를 드린다.
우리의 전도팀은 삼순시내에서 올한형제가 자서한 복음전도용 책과 전도지를 사람들에게 나누면서 그땅을 위하여 기도를 하였다. 삼순의 아가페 교회가 주안에서 견고히 잘 설수 있도록, 올한 목사와 가족에게 영육간의 강건과 특별한 보살핌이 있도록 기도하면서 우리는 그날 저녁 버스로 올두 ordu 로 향하여 출발하였다.
이른 아침 흑해의 눈부신 햇살을 너무나 검고 아름다웠다. 흑해의 바닷 바람은 마치 주님 께서 아주 잰틀 gentle 하게 우리를 만지고 계시는것 같았다. 아침식사와 그날의 일정을 위 하여 기도를 한뒤 우리 모두는 전도지와 복음 팔찌를 가지고 올두 바닷가 거리로 나왔다. 이른 아침부터 강태공이 바닷가에서 그물을 수선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마치 주님 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잡기 위하여 그물을 집는것 보시고, 이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신것 같이, 우리의 용감한 이선생님께서 그분에게 다가가서 복음팔 찌와 전도지를 전해 주는것을 계기로 우리의 전도 일정이 시작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외국인(우리 전도팀)이 전도지와 소책자를 전해주는 것을 지켜 본 한 카페 주인이, 우리를 초대하였다. 함께 차를 마시면서 주인은 그의 형제와 친구를 불러와서 T 흑해 전통 춤을 가르쳐주었다. 아침부터 흑해 전통 춤을 추면서 체조를 하는 우리팀은 정말 재미있었다. 하나님은 아주 멋지고 기가막힌 분이시다. 우리의 운동 부족을 아시고 이곳 흑해에서 T 전통춤을 배우면서 아침 운동을 시키시고 계셨다. 그리고 형제는 그의 조그마한 승용차로 우리 일곱명을 목적지까지 태워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올두의 가장 높은 산에 올라가서, 이곳을 위하여 기도를 했다. 그리고 상점에서 구입한 머리수건을 쓰면서, 성경에 비유한 한 드라크마의 동전을 잃어버 린 여인을 회상했다. 올두는 13 세기를 전후로하여 흑해지역에서 기도원과 신학교 운동이 아주 활발하게 일어났던 곳 중의 하나이다. 특별히 흑해에서 가장 큰 그리스 정교회가 절 벽을 끼고 바닷가에 멋지게 세워져 있었다. T가 이슬람 민주 공화국으로 선포하고 난 뒤, 1923 년부터 1997 년까지 감옥으로 사용하였다. 교회의 건물이 워낙 커서 세곳으로 나 누어 남자와, 여자 죄인은 일층에 감금했으며, 청소년 범죄자들은 위층에 가두었다. 감옥으로 사용하는 칠십여년동안 교회의 내부는 회칠과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회손되었다. 교회의 예배 공 간의 모습은 거의 흔적을 찾아 볼수 없었다. 단지 천장안의 가장 높은 부분에아주 조금 남겨진 그림 만이 보일뿐이었다. 이곳을 지금의 지역 정부에서 박물관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보수 공사를 한다고 했다.
우리가 방문했을때 지역 공무원이 교회를 돌면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이것에 감사를 느끼면서 공무원에게 복음을 나누었다. 주님의 탄생과 죽음, 부활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는데 아주 열심히 듣는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함께 일하는 청소부 여인을 견제하면서 약간의 불편한 모습을 보이다가 나중에는, 현정부 의 옹호와 거대한 모슬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에 대하여 반박을 하면서 큰 소리로 화를 내었다. 복음을 전했던 우리 는 공무원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것에 대하 여 사과를 하면서 교회를 나왔다. 하지만 교회의 문을 열고 나왔을 때, 그곳에 있는 많은 학생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옛날의 신학교 건물을 지금은 지방 학교로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 용감한 전도팀은 아주 재미있게 학생들에게 전도지와 복음 팔찌를 주면서 복음을 나누고 있는데, 느닷없이 우리의 앞에 완전 무장한 유니폼을 입은 두 경찰이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학생들은 모두들 어리둥절하여 어찌 할바를 몰라했으며, 우리 팀은 한시간 반넘게 경찰들에게 여권을 빼앗기면서 그곳에서 조서를 받았다. 하지만 아무리 무서운 경찰도 복음을 들어야 했길래, 우리 전도팀은 있는 힘을 다하여 경 찰 두분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이외로 복음을 들은 경찰의 반응은 긍정적이었으며, 경찰 한분은 자신도 기독교인들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곳에게 20십분 정도 떨어진 곳에 아주 멋진 기도원과 교회 가 있는데 시간이 되면 꼭 방문하길 원한다고 했다.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하면서.
마침내 고위 상관이 도착하여, 그들의 대화가운데 우리를 자유롭게 놓아주기를 결정하면서, 다시 이곳에서 전도를 하기원하면 꼭 본인들로 부터 허락을 먼저 받아야 할것을 강조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진정한 전도자의 마음을 느끼게 되었으며, 믿음은 많은 고난과 힘든 아픔을 통해서 더욱 성숙해 나간다는 것을 깊게 느끼게 되었다.
올두에서 귀한 경험을 한뒤, 우리 일행은 기레순 GIRESUN 으로 전도지를 옮겨갔다. 기레순의 버스정류소에서 기다리는 동안, 함께 수 다를 떨었던 모슬렘 신학교 여학생들에게 권사님들의 상냥한 친절과 환한 미소로 다섯명 의 학생들에게 전도용 책자와 복음팔찌를 나
누어 주었다. 아주 좋은 분위기가 되어 함께 사진을 찍고 난뒤, 여학생 중의 하나가 자신 의 머리에서 스카프가 흘러 내리는 것에 대 하여 당황하면서, 자신의 머리카락이 공공 장 소에서 남들에게 조금 보여졌다는것에 대하 여 심한 수치감을 느끼진다고 했다. 여자의 머리카락이 보여지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에 가려져야 한다는, 그들의 불평등한 이론과 천국은 단지 선택된 아주 극소수의 아름다운 여자들이 남자들의 시중을 들기 위 하여 간다는 이야기를 아무런 거부 반응없이 받아들이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런 학생들에게, 우리는 천국 대하여 나누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으로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은혜 인하여 영원히 천국에서 살수 있는 특권을 누린 것과 우리의 영원한 고향인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 살수 있는 있는 곳, 이들에게도 우리의 천국에게 함께 보길 원했다.
천국의 소망을 잃어버린 자들, 주님은 그들을 부르고 계신 것이다.
우리 전도팀은 트라브죤에서 차를 렌트한 뒤 규무쉬하네 GUMUSHANE 로 출발하였다. 높고 험한 산길을 넘는 동안, 차안에서 불렀던 찬양은 우리가 밟는 땅마다 잃어버린 형혼들 이 주님께 돌아오길,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을 만나길 간절한 원하는 기도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곳도 잠깐 우리의 차가 규무쉬하네 중간에서 고장을 내면서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게 되었다.
규무쉬하네 GUMUSHANE (은이 있는 곳) 이지역의 대부분의 90%이상이 고원과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 역시 19 세기초만해도 삼백여개가 넘는 크고 작은 기도원과 수도원, 교회들이 있었던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되어 있다. 우리의 귀한 믿음의 형제 무라트와 을마즈가 이곳 출신이다. 무라트는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대면서 믿음을 저버리고 개신교를 떠나 다시 모슬렘으로 돌아가라는 죽음 앞에 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킨 형제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빌랄 BILAL 형제를 만났다. 그는 T 중부지역인 말라티아세 온 쿠르드 족 학생이었다. 그가 열살때 부모님은 경제적인 이유로 독일로 가족전부가 이민을 갔다. 독일 이민 생활가운데 부모님은 하루종일 밖에서 생계를 유지할때, 빌랄은 집안에서 어린 동생들을 돌봐왔다. 그런가운데 열일곱살 때, 누군가로부터 들은 예수그리스도 대하여 궁 금해 하면서 성경을 읽고 혼자서 방안에서 기도를 하는데 주님이 그의 기도 가운데 찾아 오셨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잘못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분이 참 하나님이신것 을 사람들은 다른 쪽으로 유인하고 있으며, 눈을 멀게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후 혼자서 믿음을 간직하다가, T의 사촌형이 교수로 있는 규무쉬하네 대학으로 온뒤 외롭고 힘들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우리 일행으로부터 받은 한통의 전화가 빌랄 형제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빌라과 함께 카페에 앉아서 말씀을 나누면서 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눈시 울을 붉히면서 하는 말이: 만일 자신이 찾는 구도자가 진정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맞다고 인정되는 순간, 자신의 목숨까지도 받치면서 끝까지 신앙을 지키겠다고 했다.
우리 주님은 참으로 멋지다. 우리의 차가 고장이 나지 않았다면, 이곳에서 빌랄을 만날수 있었겠는가! 주님의 계획과 선한 인도하심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이곳 규무쉬하네 에서 우리의 방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빌라를 만날 줄은 상상도 하지못한 일이었다. 카페에서 많은 남자들이 할일없이 차를 마시고 있을 때 우리는 빠른 속도로 그들에게 전 도지를 나누고 난뒤 바이불트 BAYBURT 로 출발하였다.
바이불트 BAYBURT 는 T모슬렘 셀죽이 아시아로부터 T로 내려오면서여 정복하여 주둔한 지역이다.
역사적으로는 로마제국으로부터 거스려 올라가면서, 적군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세운 성벽들이 비잔틴을 거쳐서 셀죽시대로 거쳐오면서 오스만 제국시대에는 몽고족의 침임을 막기 위하여 사용되어온 아주 오래된 높은 성벽중의 하나이다. 우리 전도팀은 그곳에 올라가서, 이 도시를 위하여 기도를 하는 가운데 우리 뒤에 따라온 네명의 남자 대학생들을 만났다.
네명의 대학생들은 T 오스만제국 당시의 오스만 왕의 우측 장군의 무덤이 있는 곳을 보여 주었다. 이들을 통하여 알게된 바이불트의 역사는, 로마의 박해를 피하여 숨어 살았 던 초대 기독교인들이 지하동굴에 모여 살면서 신앙을 지켜왔던 곳이 있었다. 19 세기초 아르메니아 대학살 당시에도 많은 기독교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모슬렘의 박해를 피하여 숨어서 지내 왔던 곳이 있다고 하면서 그곳에 꼭 방문하길 원했다.
우리 전도팀은 네명의 대학생들과 식사를 하면서 T의 일반적인 사회 문제에 대하여 나누다가, 서서히 복음으로 대화를 유도하였다. 너무나도 감사한 것은 대학생들에게 복음 을 전했을때, 아무런 거부감없이 경청하고 있었다. 대학생의 손에 쥐어진 토훔책 (씨앗/ 마태복음)을 함께 읽어갔다. 그리고 한번도 복음을 제대로 들어본적도, 예수그리스가 누구 인가를 전해 준 사람도 없었지만, 복음서를 읽는 가운데, 예수그리스도는 언약 가운데 이 땅에 오신것과, 그분으로 인하여 우리가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에 대하여 받아 들이고 있 었다. 세시간이 넘는 대화 가운데 이들은 한번도 복음에 대하여 반감의 표현을 하지 않았으며, 싫어하는 모습이 없었다.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하면서.
우리의 부족하고 짧은 언어로 이들에게 전해진 복음이었지만, 이 복음의 씨앗이 젊은이들 의 마음 밭에 심겨져 열배, 백배의 열매가 일어나길 기도한다.
우리의 전도팀은 트라브죤을 지나서 리제 RIZE 에 도착했다. 리제에는 약 칠년전부터 혼자 서 예수를 믿는 자매가 살고 있다.믿음의 공동체가 없는 곳에서 혼자서 우여곡절 끝에 신앙 생활을 지켜오다가, 올해 일월부터 들어간 미국인 두가정과 함께 가정교회를 이루어 가고 있다. 우리 주님은 꺼져가는 등불도 상한 갈대도 꺽지 않으시는 분이신데 리디아의 기도에 응답하고 계시것에 감사를 드리면서 이곳에서 믿음의 공동체가 크게 일어나길 기도한다..
우리는 이 가정에서 귀한 주일 예배를 드리 고 난뒤 더 북쪽 알트빈ARTVIN으로 걸음을 옮겼다.
알트빈 ARTVIN은 산지 도시라 경사가 급하고 좁은 도로이다. 차를 운전하시는 김선생 님을 위하여 우리 일행은 아무말없이 가슴 조리면서 기도를 하였다. 알트빈에서 머물렀던 호텔은 도시청사와 경찰청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이길을 조금 지나면, 군인들의 처소, 향토예비군 그 아래에는 중범죄자들이 수감 된 감옥이있는곳이다.우리전도팀의눈 에 보여진 알트빈은 어둡고 영적으로 무거 운 곳이었다. 가는 곳곳마다 경찰들과 군인 들이 가득한 거리였다. 만약 이곳에서 다시 금 경찰에 붙잡인다면 조금 힘들어질것 같아서 전도 방식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둘씩 짝을 지어서 선후발대로 나누어 산을 깎아서 만든 외길로 시간적인 감격을 두어 서 전도지를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영적으로 눌리고 힘든 곳이라 하지만, 그곳 에도 우리의 방문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었다.
우리가 전해준 전도책자를 받고 기뻐하면서 함께 차를 마시길 원했다. 차를 마시는 동안, 동네 아주머니들이 우리 주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간사님이 한분이 본인의 간증을 나누었는데 모두들 조용히 듣고 있었다. 이들의 귀한 차 대접과 헤이즐넛 한봉지를 선물로 받은 뒤, 이들의 가정에 복음의 씨앗을 심겨질수 있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였다.
알트빈의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10 세기전부터 침례 교회로 사용되어진 곳을 방문하였다. 거칠고 험한 길을 운전하면서 차도에 떨어진 큰돌들을 치우면서 우리 일행은 아주 높은 곳에 있는 오래된 침례 교회에 도착했다.
이 침례교회 역시 19 세기에 모스크로 사용하였다가, 건물이 심하게 훼손 되었을때, 바로 옆에 새로 지은 모스크로 옮겨서 사람들이 매주 금요일마다 예배를 드린다는 하는 지역 주민의 말을 듣게 되었다.
이분은 자신의 사대째 할아버지가 엘진잔 지역의 교회 영주로부터 이곳 침례교회를 위임 받아서 옮겼다고 한다. 사람들은 교회의 옆으로 흘러 들어온 아주 맑은 계곡물로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19 초 까지 세례교회로 사용되었다가, T가 모슬렘 공 화국으로 선포한뒤 교회가 모스크로 사용되면서 본인 역시 모슬렘으로 개종하였다고 한다. 이 가 정은 우리에게 귀한 T 토종 간식을 먹으면서 교제를 나누었다. 아침마다 교통이 불편한 학생 들을 위하여 셔틀버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오늘 아침 갑자기 목이 삐어서 운전을 할수 없어 집에 있었다고 했다. 우리 전도팀은 이분에게 조상들이 신 앙을 잘 지켜서, 아주 먼 이국땅까지 복음을 전해 준것에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그리고 이분의 삐은 목을 위하여 기도해주었다.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간곡한 기도로 이분의 목이 완전히 정상적으로 돌아 왔는데, 주님의 기적을 받아들이기가 아직은 부담스러운지 자신이 목이 정상적으로 돌아 온것을 부인하였다. 하지만 이 가정에도 복음의 씨앗을 뿌릴것을 믿고 있다. 이분의 아버지는 기도 받기를 어색해하는 아들에 게 기도를 받을 것을 응했으며, 본인 역시 한쪽 눈이 멀어서 보지 못하는데도 열심히 우리의 간절한 기도에 아멘으로 대답하였다.
우리 전도팀은 발걸음을 차이로 유명한 주인이 있는 곳, 차이엘리 CAYELI 로 걸음을 옮겼다. 차이엘리는 T에서 가장 맛있는 차이를 생산하는 곳 중의 하나이다.
경관이 너무나 아름답고 차이를 가장 잘 재배한다는 유명한 차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가정을 방문했다. 우리의 시골 농촌 같은 분위기에서 차이 할머니와 할아버지 가정을 위하여 기도했다. 이 가정에는 세딸이 있는데, 큰딸은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한것에 대한 분노때문에 십여년이 넘는 지금에도 큰딸의 출입을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둘째딸은 모슬렘 학교를 나와서 코란선생을 하고 있으며, 셋째딸은 차이 공장에서 함께 일을 한다고 한다. 모두들 출가하여서 손주들을 보는 재미로 살아가는 할머니는 당뇨병으로 인하여 심한 고생을 하면서 제대로 걸음을 걷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전도팀은 할머니의 병이 낫기를 합심하여 기도하였다. 차이 할머니 역시 영접기도를 따라 하면서 주님을 삶가운데 들어오길 원했다.
이 가정의 밭에 떨어길 복음의 씨앗이 많은 열매를 맺어서 자식들과 손주들에게 영생을 길로 인도되길 바랬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용서와 사랑의 은혜를 맞보길 기도했다.
다음날 아침 트라브죤에서 우리는 사역자 가정 들을 위하여 기도를 하였다. 이곳에 있는 가정 교회가 말씀안에서 순결하길 기도하였다. 말씀이 바로 선포되지 못하는 교회, 믿음의 공동체들이 물질과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을 들었 을때 마음이 무척 아팠다.
이곳 대학에서 믿음의 가정에서 살아온 에브로 형제는 트라브죤에 있으면서, 믿음에 대한 회의와 우울증으로 인하여 힘들어하고 있었다. 우리의 방문으로 인하여 함께 기도하면서 본인의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을 위하여 기도해 주었다.그리고 진정한 용서만이 우리의 영혼을 자유롭게 할것이라는 것을 상기하면서, 에브로 형제의 믿음안에서 새롭고 강건해 질수 있도록 기도했다.
이곳 북해는 복음의 씨앗을 심을 자를 주님은 찾고 계신다. 우리가 밟고 찾아갔던 곳마다 영혼들이 목말라 갈급하고 있었으며, 누군가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줄 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록 우리의 서투른 모습과 짧은 언어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지만, 아무도 복음을 거 절하지 않았다.
우리는 보잘것 없고 아무것도 아닌 단지 마른 나무조각에 불구했지만, 주님의 큰 능력과 힘에 의하여 만들어진 단기 전도팀을 아주 멋지게 사용하셨다.
주님은 멋지고 아름다운 복음 전도 사역에 우리를 초대하고 계신다. 우리에게 가장 알맞고 귀한 상급을 주기 위하여 여전히 누군가를 찾고 계시며 부르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복음의 귀한 씨앗을 뿌리는 일에 우리를 부르시면 추수의 그날이 왔을때는 기쁨으로 수 확에 참석하길 원하고 계신다.
나는 이 보고서를 쓰면서 언어의 부족과 한계를 느꼈다. 한 문장으로 주님의 높고 위대한 일을 찬양 할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 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과 그분으로 인하여 진정한 삶을 누릴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것에 뛰어난 이름에 영광을 올리면서.
SH. Grice
후원계좌: 농협 941-12-14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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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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