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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만남들 [크로아티아 강민구 선교사]
- 조회 : 1,777
- 등록 : 2020-10-07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벌써 여름이 되었습니다. 아내가 자주 고백하고 감사한 것은 지난 3개월간 긴 환절기 속에서도 가족 모두가 건강 했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한국에 있었다면 아이들 때문이라 여러번 병원에 다녔을 것입니다. 이곳에서 8번의 숙소를 옮겨 다녔지만 쌍화탕 먹는 정도는 있었지만 병원에 갈 일은 없었습니다. 함께 동역해 주시는 여러분들의 기도와 사랑으로 인한 은혜 외에는 달리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 가족은 몬테네그로를 떠나 알바니아에서 발칸 지역의 OM 선교사 수련회를 마치고 다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 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도해주셔서 좋은 가격에 집을 구해서 이삿날 (8월 1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여러 이유로 늦어지긴 했지만 한국에서 보낸 이삿짐이 가장 좋은 시간에 도착하기도 했습니다. 비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번 경찰서(외국인 거주 관련 부서)에 오고 가고 에어비엔비 숙소에 문제가 있어서 갑자기 집을 옮기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때마다 사람들을 붙여주시고 예비하신 은혜들로 인하여 정말 감사히 지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크로아티아 선교를 준비하면서 만나게 하신 분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4년을 기다린 OM Balkan 수련회"
2016년 10월 크로아티아가 포함된 발칸 유럽 지역 리더인 데인 핸슨에게 사역지 문의 메일을 보냈였습니다.. 데인은 바쁘다고 하면서 14줄 정도로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보통 바쁘면 답장을 하지 않던지 2-3줄만 해도 충분한데도 말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년 2017년 4월에 발칸 수련회가 있는데, 이 때를 맞춰서 오면 어떨까요?"
2017년 태국 방콕에서 만난 데인 핸슨 (발칸유럽 지역 리더)와 볼칸 체이스 (몬테네그로 리더/현 발칸 필드리더
2019 발칸 수련회에서 만난 데인 핸슨 부부
2017년 태국 방콕에서 있었던 국제오엠리더스미팅 ILM에서 데인은 제게 이렇게 말을 했었습니다.
"민구 선교사가 오면, 오엠 크로아티아를 시작하는 거야."
그리고 2019년 5월 오엠 발칸 수련회
"드디어 왔군. 전에 나눈 이야기가 이루어졌어!"
발칸 유럽 : 종교개혁 이후 복음이 단 한번도 사회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곳
OM은 지난 60여년간 유럽을 선교지로 여기고 사역하면서 지금까지 수 천 여 교회에 영향력을 끼치고 많은 사역자들을 동원하였습니다. 현재 850 여명의 선교사들이 유럽 전역에서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OM 유럽지역의 새로운 대표인 요한스는 앞으로 OM 유럽이 초점을 맞추는 4가지 지역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4가지를 다 소개하면 좋겠지만 국제오엠의 보안 규정 상에 따라 하나만 나누고자 합니다.
발칸 유럽에서의 교회 개척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발칸 유럽이 이곳이 어디인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동유럽 어딘가의 작은 나라들이라고 여기 질 정도입니다. 이 지역은 루마니아를 제외하고 종교개혁 이후에 복음이 한번도 사회에 영향력을 끼친 적이 없는 나라들 입니다. 종교개혁 전후로 줄곧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으며 카톨릭과 정교회 그리고 무슬림이 서로 민족과 정치 그리고 독립 운동과 맞물려 투쟁하며 살아왔던 지역입니다.
발칸반도의 개신교 현황- 통계는 언제나 실재보다 많다는 것이 문제이다. 크로아티아의 경우 실재 교회 출석인원은 4500명이 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오엠 유럽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의 비율이 0.01-1% 이하인 이 지역들에 교회 개척을 하기를 원합니다. 사실 통계는 실재보다 사람이 많아 보입니다. 크로아티아의 경우 개신교인 수가 약 2만명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재 교회 출석율은 4500명 이하로 통계의 1/3-1/4 수준입니다. 또한 카톨릭과 정교회의 신학적 문제 보다 더 심각한 것은 사람들이 교회가 가지 않거나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관계가 전혀 없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들에게 기독교는 그냥 전통일 뿐 비과학적인 과거의 유산일 뿐입니다.
오엠은 이곳에서 교회를 개척함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를 활력있는 공동체를 보기를 원합니다.
이번 수련회는 저로 하여금 현지 교회 지원 사역과 교회 개척이라는 비전에 대해서 다시금 분명하게 해주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다시 크로아티아로!
저희 가족이 가장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착입니다. 작년 11월말 살던 시흥시를 떠나면서 1주일 이상 지낸 숙소가 한국에서 5곳, 그리고 지난 3개월간 7곳의 숙소를 옮겨 총 12곳을 옮겨다녔습니다. 몬테그로에서 40 여일을 보내면서 저희의 소망은 빨리 크로아티아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 저희 집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뒤에 보이는 승합차를 타고 꾸불꾸불한 해안도로를 3시간을 달려 크로아티로 향했습니다.
몬테네그로 바르에서 택시를 타고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닉 공항까지 3시간을 달려 도착했습니다. 코소보에 방문했을 때 선교사님 가정에서 주신 삼각김밥 재료로 도시락을 만들어와서 공항 한 켠에서 배부르게 먹고 다시 차를 렌트를 해서 달마시아의 토르기르라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짐을 가득 싣고 꼬불꼬불한 1차선 도로를 100여 키로를 달렸습니다. 드디어 고속도로 다 싶었는데, 어떤 안내도 없이 통제되어 총 시간이 10시간이 달리게 되었습니다. 길은 막히고 몸음 힘들었지만, 토르기르가 가까지면서 제 마음은 많이 설래였습니다. 바로 토르기르는 제가 13년 전에 로고스호프 때문에 조선소에서 사역하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Trogir 구시가지
예전에 커피를 마시던 카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금은 레스토랑으로 변해있었습니다. 한달 용돈 20유로 (2만6천원) 주말에 카페에서 1천원짜리 커피 마시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한달에 한번 6천원짜리 피자를 사먹 던 곳과, 친구들이 떠나기 전에 가서 먹던 아이스크림 집들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1주일에 한번씩 동네 꼬마들과 놀아주던 농구장도 그대로였습니다. 이 농구장에서 제 별명은 "야오밍 (키 230 cm의 전 MBA 선수) 이었습니다. 아마 동네 꼬마들에게 농구하는 동양인은 야오밍 밖에 몰랐기 때문인 듯 합니다.
저희 가족 모두가 좋아하게된 도시가 되었습니다.
12년 전에 가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왜냐하면 이곳은 저에게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곳이 아니라 아픈 상처가 있는 곳이어서 돌아오고 싶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12-13년 전에 로고스호프 선교사 개조 작업을 하던 조선소 입구
저는 2006년 9월에 로고스2 선교선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크로아티아 토르기르의 조선소에서 노동자로 오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곳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분명 파송 받은 선교사인데, 제 사역은 조선소에서 녹을 제거하거나 페인트를 칠하는 것이었습니다. 식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40도에 가까운 여름철에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뜨거운 배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위암 판정을 받으셨고 누나들과 형을 비롯한 모든 가족들에게 큰 어려움들이 있을 때 저는 이곳에서 조선소에서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노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족을 위해서 금식 기도를 하면 그 다음 날에 노동을 할 수 없었기에 사역인 노동을 위해 금식을 포기하고 기도할 곳을 찾아다니던 때 였습니다.
현재 조선소의 내부.. 로고스호프를 수리하던 자리에 비슷한 배가 수리를 받고 있다.
조선소 뒤에 보이는 산들을 혼자 올라가 걸으며 많이 울기도 하고 기도하던 때가 생각 났습니다. 산 중터의 공동묘지의 작은 교회에 올라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나는 왜 선교사로 나와서 이런 노동만을 하고 있고
또 왜 우리 가족은 이런 어려움과 아픔을 겪어야 하는가?
왜 가족을 돕고 곁에서 작은 위로도 할 수 없이 이렇게 멀리 있어야 하나?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사역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지만 주변 누구와도 나누고 함께 기도할 친구도 하나 없었습니다.
12년전에 북한사람이냐는 소리를 들으며 일하던 모습들
숙소의 침대에 누우면 세워져 있는 관에 갇힌 것 마냥 숨을 쉴 수 없어서 밖으로 뛰쳐 나가 기도할 만한 곳을 찾다가 미사 중인 성당에 들어갔었습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크로아티어로 미사가 드려졌고 저는 하루 종일 노동을 한 고된 몸으로 앉아서 졸기만 했습니다.
어느 날 미사 마지막 부분에 "온 땅이여 주님께 외쳐라 능력과 위엄의 왕 되신주"라는 우리 개신교의 찬양이 불려졌습니다. 이 찬양 마지막은 "신실하신 주의 약속 나 받았네"였습니다.
"이곳에 교회를 세워주십시오."라고 땅 밟기 기도를 하던 반환점이었던 곳
내가 받은 신실하신 주의 약속은 무엇인가?
내가 선교를 나오면 우리 가족이 행복해지는 것인가?
내가 받은 복은 예수님으로 인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인데,
나는 이것을 누리고 있는가?
그때 또 깨달았습니다.
저는 노동을 하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도 맞지만 이곳의 교회의 현실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곳에 교회를 세워 달라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저처럼 기도할 곳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기도하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할 수 있고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공동체를 세워달라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도를 하고 12년이 지나서 작은 꿈을 품고 가족과 함께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파송예배 당일 다 나누지 못한 답사에 이 내용들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 링크를 통해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래된 만남들
불교적인 용어라는 하지만 정말 성경적인 단어가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나게 하실 때는 그냥 우연은 없습니다. 불교적인 용어가 아니라 은혜의 단어라고 믿습니다. 다시 안 볼줄 알았던 사람들 혹은 내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관계들 그리고 전혀 몰랐던 사람들이 귀한 관계들이 되어 갑니다.
24년간 열정적으로 사역하신 우베 선교사
12년전 몇차례 함께 노방전도하고 예배를 드렸던 우베 선교사님(독일)
크로아티아를 다시 품으면서 처음으로 연락을 드린 분이 바로 우베 선교사님(독일)이었습니다. 별로 친하지 않았기에 저를 기억하지 못하실 줄 알았는데 메세지를 처음 보낸 3년 전부터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연락을 주셨습니다.
우베 목사님이 운영하시는 크로아티아 유일의 기독교 서점-
우베 목사님은 1995년, 전쟁 직후부터 지금까지 24년을 사역하시면서 많은 선교사들이 오고 가는 것과 현지 교회의 여러 상황들을 정말 잘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교회 개척, 청년 사역, 복음 전파 사역, 문서 사역, 컨퍼런스 사역, 교회 네트워크 등 많은 영역에서 사역하셨습니다. OM 크로아티아가 공식적으로 없는 이때까지 크로아티아에 오는 모든 OM 단기팀과 심지어 선교선의 입항까지 도와주시는 분이셨습니다. 4시간 정도 말씀을 나누면서 그분 속에 여전하 열정과 지혜 그리고 조언들을 마음 깊게 남게 되었습니다. 정기적으로 찾아뵙고 또 배우고 기도부탁을 드릴 계획입니다.
크로아티아의 선배 한인 선교사
98년, 2008년 그리고 2019년.10년의 차이를 둔 선후배 선교사가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함께 하지 못한 이곳의 다른 선교사님들이 계시지만 저에게는 뜻 깊은 자리였습니다. 2016년 가을 새벽에 인터넷으로 검색하다가 그 전날 한국에 오신 김경근 선교사님과 연락이 닿아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2017년 1월 1일에는 섬기고 있던 하나비전교회에 저녁 예배 강사로 오신 순돈호 선교사님(전 크로아티아/현슬로바키아)과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순돈호 선교사(중앙 좌), 김경근 선교사 (중앙 우), 이동희 집사/영사 (우)
이 두 선교사님들도 서로 한번 정도 우연히 얼굴만 뵙고 인사를 나누신적 밖에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일에는 다 함께 한자리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이 자리를 저를 위해서 예비하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12년만의 만남 - 로고스2 절친 크리스티안
2006년 로고스2에서 로고스호프로 사역지를 옮길 때 가장 반대하고 아쉬워했던 친구 크리스티안이 자그레브의 숙소로 찾아왔습니다. 작년 답사 때부터 저를 만나러 비엔나에서 내려오려고 했는데, 갓난 아이 때문에 못 온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19살에 처음 만났던 친구는 이제 30이 넘었습니다. 예전에 함께 보던 한국 드리마를 기억하고 저를 꼭 끌어 안으며 말을 해줍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아이들 때문에 정신이 없고 서로 나이가 많이 들어가지만 오랜 친구의 방문을 큰 힘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크리스티안 부부와 함께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크로아티아로 돌아 올 마음을 먹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선교지의 현황에 대해서 알려주시며 도와주신 분 분들을 다 만난다는 것은 큰 격려이고 또한 은혜 였습니다.
"1994년 이후로 수 많은 선교사들이 이곳을 찾아왔습니다. 많은 사역을 열정적으로 하며 많은 재정을 사용했지만 지금 이곳에 남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곳 그리스도인들에게 선교사는 몇 년 후에 집에 갈 사람으로 인식되어 마음을 잘 주지 않습니다. 오지 않고 돈만 지원해주면 되는데 뭐하러 오냐는 인식도 강합니다. 그래서 선교사에게 마음을 여는데 최소 2-3년은 지켜 보게 됩니다. 오래 있으면서 한결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선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 일 것입니다." - 24년 사역하신 우베 선교사 (독일)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탁월한 신학 박사와 인재들이 이곳 출신들입니다. 이들은 발칸이라는 말도 싫어하고 동유럽이라는 말도 싫어합니다. 절대로 "도우러 왔다.", 제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말하면 절대로 그들 속으로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최소한 1-3년은 겸손하게 이곳 교계 지도자들에게 듣고 배우며 지속적인 만남을 유지할 때, 그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보여주시는 관점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순돈호 선교사 (전 크로아티아 오시에크 신학대학교 부총장/ 전 GMP 국제대표)
"먼저 언어를 배우고,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하고 안정감을 가지며 이곳 사람들에게 가정이 사랑받는다고 느껴질 때, 그때부터 한 걸음식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선교사는 오래 있어야 합니다. 그럴려면 가정이 행복해야 합니다." 데인 핸슨 (OM 발칸 지역 리더들)
이 말씀들은 한국에서 여러 목사님들께서 말씀하신 것들과 동일합니다. 조급하지 않게,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 속에서 적응하며 가족을 돌보며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며 사역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으로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오셔서 오랜 시간을 기다리시고, 또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역하시고 설교하셨던 것을 본받으며, 기도하며 말씀과 선교지를 연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품고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사는 이야기 하나
크로아티아어를 배워야만 한다. 애들아
이바는 아이들의 크로아티아 선생님이지만 사실 고등학생입니다. 한국어를 배우고 있고 성실해서 크로아티아 과외를 부탁하게 되었지만, 가르치는 경험이 많지 않고 저희 로이레의 언어와 상황적 특수성 때문에 많이 힘들어도 합니다. 아이들은 9월 둘째주부터 학교에 다니게 됩니다. 아직 현지어를 하나도 하지 못하고 매우 느리게 공부하고 있어서 많이 답답하기도 합니다.
로이와 이레의 크로아티아 선생님 이바
그래서 제가 직접 아이들의 상황에 맞는 단어 사전을 직접 만들고 영어를 수 년간 가르쳤던 경험으로 과외 선생님을 격려하며 수업을 돕기도 합니다. 매일 단어 시험보고 복습을 2차례나 시키며 강행군 중 입니다.
로이는 용돈을 걸고 목표로 열심히 자발적으로 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알파벳이 익숙하지 않은 이레는 어려워 해서 파닉스(발음)부터 차근히 별도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9월까지 500개 이상의 단어를 알고 간단한 말을 할 수 있도록 기도부탁드립니다.
한국 음식 해보는 거야 2
둘째 이레가 딸기 우유가 먹고 싶다고 울어서 딸기를 갈아서 만들어 줬더니 두번은 안먹네요. 실패. 감사하게 다시는 딸기 우유 찾지를 않습니다. 해산물이 먹고 싶다고 하는데, 해산물이 비싸고 또 냉동 밖에 없는데, 유럽 대구의 냉장살을 발견해서 밀가루 없이 계란만 가지고 대구전.. 성공! 먹고 싶다고 하면 뭐든지 해줄테니 말만 하라고 아빠는 큰소리를 칩니다. 그랬더니 은혜 가운데 이삿짐 속의 식자재가 세관에 걸리지 않아서 짜장가루, 카레 가루로 열심히 해주고 있습니다. 잘 먹고 크로아티아어 공부해라~
정체불명의 생선으로 만든 생선전
자몽을 넣은 물김치
아내의 자몽을 넣은 물김치 ... 자몽은 글쎄, 그런데 물김치는 성공. 몬테그로에서는 그냥 먹을게 없어서 먹었는데 이제 맛있어서 먹습니다. 참고로 저는 한국에서 물김치는 손도 되지 않던 사람입니다.
감사 제목
1. 크로아티아로 잘 돌아오고 아무도 아프지 않음에 감사
2. 좋은 집을 구할 수 있음에 감사 (8월 1일 이사)
3. 한국에서 이삿짐이 잘 도착해서 감사
4. 만남의 축복을 주심에 감사
5. 음식 솜씨가 늘어서 감사
후원 계좌 국민440290-29-001663 한국오엠 강민구
사역 보고 및 선교 나눔/ 강의 문의:카톡 Roireh78, mingookang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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