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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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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2
- 방송일 : 2007-02-11
- 조회 : 3982
07년1월14일십일조(말3:8-12)
인간관계든 하나님과 인간관계든 주고받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고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은 인간에게 열을 주시고 인간은 하나님께 하나를 드립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마4:7).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하셨는데 딱 한 가지 시험해 보라고 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10). 십일조를 통해서 하나님을 시험하여 보라고 하십니다.
1. 십일조는 마음중심으로 드려야 합니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 찐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 찐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 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을 경멸 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 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 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를 우리를 긍휼히 여 기소 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중 하나인들 받겠느냐”(말1:6-8). 예배드림에 있어 감사와 감격이 빠지고 부담만 남아 있다면 그것은 본질이 빠진 현상의 예배입니다.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 렸 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 찌니라”(마23:23). 시시한 것은 십일조 하고 중요한 것은 안 한다는 것입니다. 현상은 있는데 본질이 빠진 것은 받지 않으십니다.
2. 십일조가 부담이 되는 것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찌니라”(히11:6). 십일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를 드릴 수 있는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보통 성도들이 믿음이 떨어지면 십일조에 대하여 나타나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십일조는 율법의 산물 이라는 생각입니다.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신14:22). “왕의 명령이 내리자 곧 이스라엘 자손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과 밭의 모든 소산의 처음 것을 풍성히 드렸고 또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으며”(대하31:5). 둘째, 십일조 액수만큼 좋은 일에 쓰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십일조는 헌금이 아니라 신앙고백입니다. 우리의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요 나는 그것을 잠시 맡은 청지기 일 뿐 이라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내 마음대로 쓰는 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3. 성경이 말하고 있는 십일조를 드린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삶의 결과
성경에 나타난 최초의 십일조를 드린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 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말3:11). 그 축복이 반석위에 지은 집입니다. 그 반면에 롯은 십일조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 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말3:8). 롯의 축복은 모래위에 지은 집입니다. 여러분의 뒤안길에 축복의 아름다운 간증이 남길 바랍니다. 오늘 내 축복이 반석위에 집인가? 모래위의 집인가? 깨닫기를 바랍니다. 야곱이 십일조를 합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 나이다 하 였더라”(창28:20-22). 또한 히스기야 왕도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명하여 여호와의 전안에 방을 예비하라 한고로 드디어 예비하고 성심으로 그 예물과 십일조와 구별한 물건을 갖다 두고 레위 사람 고나냐는 그 일을 주관하고 그 아우 시므이는 버금이 되며” (대하31:11-12). 느헤미야 또한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어느 시대이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랑을 따라 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로 축복 받는 길!
하나님의 축복이 올 한해도 아브라함과 같은 간증의 주인공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간관계든 하나님과 인간관계든 주고받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고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은 인간에게 열을 주시고 인간은 하나님께 하나를 드립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마4:7).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하셨는데 딱 한 가지 시험해 보라고 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10). 십일조를 통해서 하나님을 시험하여 보라고 하십니다.
1. 십일조는 마음중심으로 드려야 합니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 찐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 찐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 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을 경멸 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 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 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를 우리를 긍휼히 여 기소 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중 하나인들 받겠느냐”(말1:6-8). 예배드림에 있어 감사와 감격이 빠지고 부담만 남아 있다면 그것은 본질이 빠진 현상의 예배입니다.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 렸 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 찌니라”(마23:23). 시시한 것은 십일조 하고 중요한 것은 안 한다는 것입니다. 현상은 있는데 본질이 빠진 것은 받지 않으십니다.
2. 십일조가 부담이 되는 것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찌니라”(히11:6). 십일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를 드릴 수 있는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보통 성도들이 믿음이 떨어지면 십일조에 대하여 나타나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십일조는 율법의 산물 이라는 생각입니다.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신14:22). “왕의 명령이 내리자 곧 이스라엘 자손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과 밭의 모든 소산의 처음 것을 풍성히 드렸고 또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으며”(대하31:5). 둘째, 십일조 액수만큼 좋은 일에 쓰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십일조는 헌금이 아니라 신앙고백입니다. 우리의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요 나는 그것을 잠시 맡은 청지기 일 뿐 이라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내 마음대로 쓰는 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3. 성경이 말하고 있는 십일조를 드린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삶의 결과
성경에 나타난 최초의 십일조를 드린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 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말3:11). 그 축복이 반석위에 지은 집입니다. 그 반면에 롯은 십일조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 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말3:8). 롯의 축복은 모래위에 지은 집입니다. 여러분의 뒤안길에 축복의 아름다운 간증이 남길 바랍니다. 오늘 내 축복이 반석위에 집인가? 모래위의 집인가? 깨닫기를 바랍니다. 야곱이 십일조를 합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 나이다 하 였더라”(창28:20-22). 또한 히스기야 왕도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명하여 여호와의 전안에 방을 예비하라 한고로 드디어 예비하고 성심으로 그 예물과 십일조와 구별한 물건을 갖다 두고 레위 사람 고나냐는 그 일을 주관하고 그 아우 시므이는 버금이 되며” (대하31:11-12). 느헤미야 또한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어느 시대이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랑을 따라 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로 축복 받는 길!
하나님의 축복이 올 한해도 아브라함과 같은 간증의 주인공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