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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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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방 :
느보산
- 방송일 : 2006-01-01
- 조회 : 7010
느보산(신34:1-7)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한 사람들이나 출애굽 후 40년을 광야에서 고생하던 사람들이나 별로 내 놓을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셔서 친히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렇듯, 내 놓을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는 우리를 하나님이 사랑하셨기에, 현재의 축복 뿐 아니라, 장차 우리를 천국 본향으로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생각도 마음도 말도 행동도 하나님 보시기에 두고 보기에도 아깝게 행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애굽의 역사를 알면 세계사, 가정사, 국가사와 개인사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는 교훈이 되고 미래의 지침서가 되는 것입니다.
1.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당대 최고의 나라(애굽)에 젖 붙여서 생성해 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당대 최고의 나라, 애굽에 붙여 거기서 민족을 생성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이라는 것은 꼭 손해가 아니고,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2.한 달이면 충분히 갈수 있는 길(출애굽해서 가나안땅까지)을 불순종으로 인해 40년 이라는 세월을 방황하게 됩니다. 국가나 개인이나 속 차리면 쉽게 될 것을 속 못 차리면 오랜 기간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3.사람이 준비되지 않으면 하나님께 아무리 부르짖어도 쓰임받지 못합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교육받는데 40년, 광야에서 적응하고, 연단 받는데 40년, 출애굽 후의 대장정에서 40년, 그리고 나서 지금 120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준비되지 않으면, 출애굽도, 하나님의 기적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전능함을 나타낼 사람이 준비되기 전에는 하나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말을 바꾸면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이 쓰시기에 적합한 사람으로 준비만 되면, 하나님은 바로 사용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모세는 죽을 때 120세 였으나,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 하였습니다.
노아 홍수 이후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수명이 120세입니다. 창 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시편 90:10 ‘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당시도 지금처럼 사람이 70-80살 정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몸 관리를 잘해서 120세에도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힘이 없어 가나안에 못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위대한 모세가 지금 느보산에 올라가 가나안 땅을 바라봅니다. 창 34:1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산에 올라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산 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여기서, 모세의 위대함을 깨닫게 됩니다.
1)느보산에 선 모세는 후계자를 잘 키운 사람입니다.
성경 인물 3만여 명중에 후계자를 잘 키운 사람은 엘리야와 엘리사, 예수님과 열두제자, 본문의 모세와 여호수아입니다. 후계자를 잘 키운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역사는 마라톤도 아니고, 단거리 경주도 아닙니다. 역사는 계주(이어 달리기)입니다. 바톤을 이어 잘 뛰어야 하는 계주입니다. 한국교회 목사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교회를 대를 이어 잘 이끌어가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성경을 보면, 후계자를 잘 키운 사람들은 항상 제자들을 끼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다 스승의 모습을 그대로 본받아 행하였습니다.
2) 느보산에 선 모세는 “하는 즐거움”과 “보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왕의 실수가 뭡니까? 자기가 하는 것은 잘하는데 다윗이 잘하는 꼴은 못 보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모세처럼 “보는 즐거움”을 알았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보는 즐거움을 알려면 굉장히 성숙해야 하고 그 속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이 민족이 후계자를 잘 키우지 못함은 “배신”때문이며, 이 민족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사랑”입니다.
3)느보산에 선 모세는 개인사나 국가사나 “매사를 끊어보지 않고 통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인생을 통으로 보는 사람은 “재앙도 은혜이며, 채찍도 은혜”라고 봅니다. 모세가 들어가지 못한 가나안은 “천국의 상징”이지 “천국”이 아닙니다. 들어가서도 일곱 족속들을 다 멸해야만 하는 그리고, 계속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가라” 하시고 “서라” 하십니다. 모세의 위대함은 “때를 맞춰 일을 놓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모세처럼,매사를 끊어보지 말고 통으로 보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모세는 자신의 사명이 가나안 입구 즉, 느보산까지 임을 스스로 알았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요, 은총”인 것을 모세는 알았습니다. 부족한 나를 키워서 하나님이 쓰신 것처럼 부족한 여호수아도 하나님이 키워서 쓰신다고 하는 사실을 모세는 알았습니다. 모세가 위대한 것은 이런 것들 때문입니다. “주여! 내게 사랑하는 마음을 주셔서 나로 하여금 가정사나 인생사에서 축복의 대[代]를 잘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한 사람들이나 출애굽 후 40년을 광야에서 고생하던 사람들이나 별로 내 놓을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셔서 친히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렇듯, 내 놓을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는 우리를 하나님이 사랑하셨기에, 현재의 축복 뿐 아니라, 장차 우리를 천국 본향으로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생각도 마음도 말도 행동도 하나님 보시기에 두고 보기에도 아깝게 행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애굽의 역사를 알면 세계사, 가정사, 국가사와 개인사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는 교훈이 되고 미래의 지침서가 되는 것입니다.
1.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당대 최고의 나라(애굽)에 젖 붙여서 생성해 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당대 최고의 나라, 애굽에 붙여 거기서 민족을 생성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이라는 것은 꼭 손해가 아니고,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2.한 달이면 충분히 갈수 있는 길(출애굽해서 가나안땅까지)을 불순종으로 인해 40년 이라는 세월을 방황하게 됩니다. 국가나 개인이나 속 차리면 쉽게 될 것을 속 못 차리면 오랜 기간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3.사람이 준비되지 않으면 하나님께 아무리 부르짖어도 쓰임받지 못합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교육받는데 40년, 광야에서 적응하고, 연단 받는데 40년, 출애굽 후의 대장정에서 40년, 그리고 나서 지금 120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준비되지 않으면, 출애굽도, 하나님의 기적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전능함을 나타낼 사람이 준비되기 전에는 하나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말을 바꾸면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이 쓰시기에 적합한 사람으로 준비만 되면, 하나님은 바로 사용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모세는 죽을 때 120세 였으나,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 하였습니다.
노아 홍수 이후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수명이 120세입니다. 창 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시편 90:10 ‘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당시도 지금처럼 사람이 70-80살 정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몸 관리를 잘해서 120세에도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힘이 없어 가나안에 못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위대한 모세가 지금 느보산에 올라가 가나안 땅을 바라봅니다. 창 34:1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산에 올라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산 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여기서, 모세의 위대함을 깨닫게 됩니다.
1)느보산에 선 모세는 후계자를 잘 키운 사람입니다.
성경 인물 3만여 명중에 후계자를 잘 키운 사람은 엘리야와 엘리사, 예수님과 열두제자, 본문의 모세와 여호수아입니다. 후계자를 잘 키운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역사는 마라톤도 아니고, 단거리 경주도 아닙니다. 역사는 계주(이어 달리기)입니다. 바톤을 이어 잘 뛰어야 하는 계주입니다. 한국교회 목사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교회를 대를 이어 잘 이끌어가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성경을 보면, 후계자를 잘 키운 사람들은 항상 제자들을 끼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다 스승의 모습을 그대로 본받아 행하였습니다.
2) 느보산에 선 모세는 “하는 즐거움”과 “보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왕의 실수가 뭡니까? 자기가 하는 것은 잘하는데 다윗이 잘하는 꼴은 못 보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모세처럼 “보는 즐거움”을 알았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보는 즐거움을 알려면 굉장히 성숙해야 하고 그 속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이 민족이 후계자를 잘 키우지 못함은 “배신”때문이며, 이 민족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사랑”입니다.
3)느보산에 선 모세는 개인사나 국가사나 “매사를 끊어보지 않고 통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인생을 통으로 보는 사람은 “재앙도 은혜이며, 채찍도 은혜”라고 봅니다. 모세가 들어가지 못한 가나안은 “천국의 상징”이지 “천국”이 아닙니다. 들어가서도 일곱 족속들을 다 멸해야만 하는 그리고, 계속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가라” 하시고 “서라” 하십니다. 모세의 위대함은 “때를 맞춰 일을 놓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모세처럼,매사를 끊어보지 말고 통으로 보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모세는 자신의 사명이 가나안 입구 즉, 느보산까지 임을 스스로 알았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요, 은총”인 것을 모세는 알았습니다. 부족한 나를 키워서 하나님이 쓰신 것처럼 부족한 여호수아도 하나님이 키워서 쓰신다고 하는 사실을 모세는 알았습니다. 모세가 위대한 것은 이런 것들 때문입니다. “주여! 내게 사랑하는 마음을 주셔서 나로 하여금 가정사나 인생사에서 축복의 대[代]를 잘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